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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흔적을 따라 - 성모 발현에 대한 우리의 태도
세나뚜스 조회수:519 222.114.24.13
2016-01-21 09:38:31
흔적을 따라/ 마리아 발현지

성모 발현에 대한 우리의 태도

최경선·소피아

아직 어둠도 가시지 않은 이른 새벽, 나는 버스 안에 있었다. 외곽에 살면서 서울에 있는 ‘한국 마리아 도서관’에 가는 날이면 출근시간의 복잡함을 피하기 위해 아예 이렇게 일찍 집을 나선다. 버스가 등촌동을 지날 무렵, 도로 가운데에 있는 지하철 건설현장에서 스무 명 가량의 인부들이 모여 아침체조하는 것을 보았다. 고된 노동을 해야 하므로 신체에 무리가 가지 않게 하기 위해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 체조일 것이리라. 갑자기 코끝에 찡한 느낌이 전해졌다.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입김이 하얗게 엉기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양쪽에 차량들이 분주하게 오가는 탁한 공기 가운데에서 팔과 다리를 풀고 있는 그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나는 ‘누구를 좋아하는가, 또 누구를 존경하는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할 때가 있다. 성모님께 의지하고 그분을 사랑한다는 것은 굳이 밝힐 필요도 없지만, 사람들 중에서는 이미 세계적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차이코프스키와 그의 음악을 좋아하고, 일생을 바쳐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를 했던 슈바이처 박사를 존경한다. 그 외에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사람들 중에서 몇 명이 더 있다.
그런데 아침 건설현장에서 체조하던 그분들을 통해서도 나는 진한 감동을 받는다. 청소차 옆을 지나갈 때면 냄새가 지독하다고 고개를 돌려버리는 나를 부끄럽게 하는 분들은 환경미화원들이다. 팔아봤자 얼마 되지도 않는 재활용품을 수집하기 위해 구부정한 허리로 이곳저곳을 다니는 노인들, 무신경하게 사용하여 더럽혀진 화장실을 청소해주는 아주머니들, 성당 행사가 끝나면 몸을 아끼지 않고 뒷설거지를 하는 분들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든다. 이런 분들이 없으면 우리가 어떻게 깨끗한 환경에서 ‘품위’라는 것을 지키며 지낼 수 있을까?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조용히 남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헤아려 배려하시는 성모님처럼 애쓰시는 분들이다. 혹시 그 일이 생계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성모 마리아 발현지를 내용으로 하는 원고 부탁을 받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였다. 이 주제를 다루는 데는 신중을 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호기심으로 그것을 읽을 수가 있고 지나치게 그 내용에 매달릴 수 있기에, 우선 발현에 대해 우리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내용을 간략하게나마 언급하고자 한다. 그 후에 초세기부터 지금까지 알려진 다양한 성모 발현지를 소개해나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우리가 과학적으로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들이 있고, 기적이라고밖에는 말할 수 없는 사건들도 많다. 그런데 우리의 오감은 현실보다는 이런 일들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여, 이 글의 시작 부분에서 예로 들었던 이웃들과 그 현실을 쉽사리 외면하고 신비주의자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현실이 막막할수록 그 정도는 더 심하다. 괴롭고 힘든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심리적 발로이리라. 그러나 성모 마리아 발현이나 그에 따르는 기적 사건들은 우리가 신자로서 가져야 하는 신앙 내용에 대립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굳건하게 해주고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다.
그러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을 해야 하는 것일까?
우선은 교회의 판단에 따라야 할 것이다. 마리아의 발현 이야기는 매우 많다. 필자도 앞으로 소개해 나갈 터이지만 그 장소와 메시지, 목격자들도 다양하다. 그 중에는 소속 주교로부터 인정받은 경우도 있고, 교황청이 추후에 발현 목격자를 시성하거나 성지순례를 권장함으로써 간접적으로 승인하는 경우도 있으며, 일체 언급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발현 사건들은 ‘신앙의 유산’에 속하지 않는다. 교회의 승인은 교의처럼 믿을 내용으로 선포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발현이 신앙과 윤리적 가르침에 반대되는 것이 없고 신심을 위해 충분한 징후들이 있다는 판단일 뿐이다. 그래서 비록 승인된 것이라 하더라도 신자들이 거기에 동의할 의무를 가진 것은 아니다.

우리는 교회의 ‘공적 계시’와 발현 사건 등을 비롯한 ‘사적 계시’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공적 계시’는 성서와 교회 전승,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것으로서 신자들이라면 그 내용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믿어야 한다. 그런데 ‘사적 계시’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나 개개인이 받았다고 하는 메시지 등을 통해서 전해진다. 그 가운데는 교회의 가르침과 맥을 같이하는 것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성경에도 그런 거짓 예언을 주의하라는 내용이 있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카리스마적 은사가 교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1코린 14,5.19). 발현이나 사적 계시는 신앙을 더욱 깊게 하기 위한 부수적인 산물과도 같은 것이다. 새로운 발현이나 사적 계시가 이미 공적으로 계시된 내용과 모순되면 안 된다. 그리고 발현이나 사적 계시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러난 공적 계시를 보완해 줄 수도 없다. 공적 계시는 그 자체로서 완전한 것이며 거기에 덧붙여야 할 무엇이 있는 불완전한 것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미 드러난 공적 계시를 어느 특정한 시대, 특별한 상황에 처하여 새롭게 강조할 수는 있다. 그 기능은 이미 계시된 신앙과 희망에 생동적인 활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공적 계시에 의한 신앙은 언제나 어디서나 근본이 되는 진리지만 사적 계시나 발현은 지역적·시기적 한계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때로는 발현과 정신적 착란 현상이 혼동될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가 발현 사건을 승인하는 데 있어서는 신중함이 요구된다. 자칫 주관적 환시를 발현으로 승인할 수 있고, 이와 반대로 하느님이나 성모 마리아의 메시지인데도 거부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발현 사건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판별 기준을 따른다. 첫째, 그리스도에 의해 계시된 차원과 동등하게 취급되지 않으며 둘째,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발현과 주관적 착시를 구별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 셋째, 정상인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병약자들이 보는 경우가 있으므로 발현 목격자의 건강 상태를 주시한다. 그러나 마리아 발현 사건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요소는 ‘왜 발현을 하셨는가, 그 메시지의 내용은 무엇인가’에 관한 일이다. 그 메시지가 교회의 가르침에 위배된다면 올바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그리고 마리아가 발현하셨다고 해서 결코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한 인물로 여겨서는 안 된다. 더욱이 목격자가 주인공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될 일이다.

위와 같은 기준에서 발현 사건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하게 되는데, 그 판단의 책임자는 소속 교구의 교구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어떤 발현 사건이든지 그것을 모든 그리스도인이 신앙조항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강제성은 지니지 않는다. 신자로서 믿고 순응해야 하는 의무조항이 아니라는 말이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당신 자신을 앞세우고자 하는 분이 아니라, 오히려 모든 것을 가슴에 깊이 간직하고 뒷전에 머물러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공적 활동에 협력하시는 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교회 안에서 널리 알려진 발현지는 바뇌, 보랭, 체스토코바, 파티마, 과달루페, 라 살레뜨, 로레또, 루르드, 카프, 퐁멩, 시라쿠사 등이다. 그러나 그 외의 다양한 발현지도 소개될 것이다. 이곳에 소개되는 발현지에 관심을 가지고 성모님께서 주시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지만, 지나치게 그쪽으로만 신경을 집중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신앙은 그저 믿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야 귀중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자신이 평생 행상을 하여 어렵게 모은 돈 1억을 장학금에 써달라며 내놓은 할머니에 대한 뉴스를 들었다. 그분은 너무 가난하여 밥을 굶은 적도 많았고, 변변한 가게도 없어서 더위에 땀 흘리고 추위에 떨어가며 직접 물건을 들고 팔러 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어려운 생활을 했기에 공부할 기회를 얻지 못했으며, 따라서 다른 이에게 공부할 기회를 주고자 그 귀한 돈을 기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분이 한창 어려웠던 시절에 “제가 1억을 벌 수 있게 해주시면 그것을 장학금으로 내놓겠습니다”라는 약속을 성모님께 했다는 사실이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돈을 꾸준히 모은 것도 놀랍지만, 그 약속을 충실히 지킨 것은 더욱 놀랍다. 고된 작업을 하는 인부, 환경미화원과 같은 분들뿐 아니라 이 할머니께도 고개가 숙여진다. 이와 같이 실천을 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내 자신이 많이 부끄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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