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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월 교본해설 - 레지오 마리애의 기원과 역사
세나뚜스 조회수:1571 222.114.24.13
2016-01-21 09:39:40
교본해설

레지오 마리애의 기원과 역사

신문호·가브리엘 신부
신심단체에서 과거의 역사와 기원을 되새겨본다는 것은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란 ‘인간이 거쳐갔던 모습이나 인간의 행위로 일어난 사실, 그 사실에 대한 기록’인데, 이 역사는 반복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신심단체에서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 탄생 동기를 살펴본다는 것은 과거의 잘못이나 문제점을 들추어내어 그 아픔을 되씹는 것이 아니라 단체의 구성원이 과거의 모습을 통해 하느님께서 무엇 때문에, 어떤 방법으로 역사하셨는가를 느끼는 행위이며, 하느님의 역사하심을 통해 현재의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새로운 결단을 이끌어내는 행위이기에 중요한 것입니다. 그 한 예로, 2005년 8월 17일에 서울대교구 무염시태 세나뚜스에서는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 기념행사를 통해 50년간 서울교구에서 보여준 과거의 레지오 마리애 행적을 하나하나 열거하며,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서의 레지오 마리애 모습을 재조명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며, 레지오 단원들이 미래에 지향해야 할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1. 레지오 마리애의 설립 동기
레지오 마리애의 탄생 동기를 살펴봅시다. 레지오 마리애의 설립자 프랭크 더프는 1917년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지부장이 되어 극빈자와 환자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였는데, 1921년 8월 하순 월례회에서 2명의 남성회원이 구호병원의 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활동 보고에 감동한 젊은 여성들이 부인병동의 암 환자 방문을 여성들이 담당할 것을 제안하여 받아들여졌고, 이와는 별도로 여성회원들만을 모집하여 9월 첫 수요일에 모이기로 결의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레지오 마리애의 시초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몇몇 회원이 모여 기도와 영적 독서를 하고 활동 중에 일어나는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을 해결하고 ‘교구 빈민원’의 환자들을 보다 잘 위로하는 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모임을 가진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레지오 마리애 훈화집, 최경용 신부 저, 29쪽 참조).
그래서 레지오 마리애의 뿌리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에서 나왔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지만 레지오 마리애는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는 달리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활동을 금하고(단헌 38,2), 영신적 도움을 주는 것에 주력하기에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는 확실히 구분되는 단체입니다.

2. 레지오 마리애의 기원 및 역사
첫 번째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주회는 1921년 9월 7일 저녁 8시,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 전야에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Dublin)시 프란시스 거리에 있는 마이러 하우스(Myra House)에서 있었습니다.
그때 파트리치오 성당 빈첸시오회의 지도신부인 마이클 토허 신부와 공무원인 청년 프랭크 더프(Frank M. Duff, 1889~1980)를 비롯한 20대 여성 15명이 모여 ‘자비로운 성모(Our Lady of Mercy)’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모임을 가진 것이 레지오 마리애의 시초가 됩니다. 시초에 이 모임의 이름이 ‘자비로운 성모’였기에 최초의 쁘레시디움의 이름은 ‘자비로운 성모’였습니다. 그래서 레지오 마리애는 한동안 ‘자비로운 성모회(the Association of Our Lady of Mercy)’란 이름으로 불려왔습니다.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군대로서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함께하고자 하였는데, 이는 레지오에서 추구하는 목표가 성모님의 모습을 조직 안에 재현시키며, 이로써 주님을 더욱 확대시켜 사람들이 주님을 알게 하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레지오 탄생부터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과 연관이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레지오 마리애 공인 교본 25쪽 : “어쩌면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상황 때문에 이 날짜가 결정되었는데, 사람들은불과 몇 년 안 가서, 성모님이 보여주신 진정한 모성의 징표가 수없이 나타나 있는 것을 돌이켜보고 나서야 비로소 레지오가 탄생하던 그 순간에 성모님의 지극히 오묘하신 손길이 함께하셨음을 깨닫게 되었다.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의 끝 부분보다는 전야(처음 순간)가 레지오 조직의 탄생에 더욱 잘 어울렸던 것이다”).
이런 모습은 레지오의 행사, 즉 연차 총 친목회는 12월 8일 ‘원죄 없으신 잉태 대축일’과 가까운 날에, 쁘레시디움 친목회는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일’과 가까운 날에 하도록 권고하는 이유도 같은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초기의 단원들은 매주 수요일 정기 모임을 갖고, 회원 2명씩 짝을 지어 병원으로 환자를 찾아가 위로하도록 파견하였으며, 그들은 성모상을 중심으로 무릎을 꿇고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묵주기도를 바치고 영적 독서를 한 후 모임의 향후 진로와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레지오 마리애 훈화집, 최경용 신부 저, 29쪽).
레지오 마리애의 탄생 첫해인 1921년에는 4개의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으며, 5년 동안에 9개의 쁘레시디움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1925년 11월 간부회의에서 충성, 용맹, 규율, 인내 그리고 성공 등의 상징으로 불리는 로마 군대 조직의 명칭을 도입하여 오늘날과 같은 레지오 마리애의 조직 명칭을 도입하여 명명하게 되었습니다.
레지오 조직은 점차 다른 교구에도 알려져 마침내 1927년에는 다른 교구로, 1928년에는 스코틀랜드,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지로 전파되었으며, 1929년에는 첫 남성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습니다. 그리고 1932년 더블린에서 개최된 세계 성체대회를 계기로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모든 교구에 레지오 보급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레지오 마리애의 기원과 역사 그리고 설립 동기를 살펴본 바와 같이 레지오 마리애는 성모님의 마음과 뜻을 이해하고, 성모님이 아드님 예수님의 든든한 후원자로서 이 세상에 하느님 왕국이 이루어지길 바라셨듯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구체적 실천 계획을 도모하고 실현함으로써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각 본당에서는 쁘레시디움 500차, 1,000차 등의 주회합 때 기념행사를 갖고 음식도 함께 나누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를 빌려 한 가지 조언을 하자면 그 행사를 위해 여러 가지를 준비하는데, 그렇게 준비하면서 해당 쁘레시디움을 거쳐 갔던 선배 단원들을 초대하여 그들을 통해 쁘레시디움의 역사를 듣고 그들의 수고에 감사하고 함께 기쁨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동시에 기념행사를 통해 스스로 미래의 한 획을 긋는 역사의 산 증인임을 깨닫고 단원으로서 의무와 목표를 되새기며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소속된 쁘레시디움에 대한 여러 가지 자료 수집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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