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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교본해설 제 24장 레지오의 수호 성인들
세나뚜스 조회수:755 222.114.24.13
2016-01-21 09:46:13
5월 교본해설

제 24장 레지오의 수호 성인들 허윤석 세례자 요한 신부

1.성 요셉
성 요셉 성인을 이해하는 데 매우 뜻 깊고 도움이 되었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한다.신학교 시절부
터 성 요셉 성인에 대한 신심을 갖고자 열망했지만 그다지 마음에 닿는 구절도 성서에 나타나 있
지 않고 행적 역시 제시된 것이 없어 안타까웠다. 어떻게 성 요셉을 따르고 그분의 마음을 알 수
있을까? 약혼녀 ‘마리아의 임신’이라는 당혹스러운 소식에 고민했던 요셉은 꿈에 천사의 말을
듣고는 믿음을 갖고 묵묵히 예수님의 아버지가 되었다!
우리는 성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養父)라고 칭한다. 사실 나는 성 요셉을 예수 그리스도
의 양부라고 부르는 것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양부(養父)라는 말은 길러준 아버지란 뜻이
다. 성령의 잉태라는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예수의 친아버지인 성부(聖父), 즉 하느님 아버지와
구별하기 위해 성 요셉에게 굳이 양부라는 말을 사용한 듯 보였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시
지 한 인간의 아들이 결코 아님을 강하게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이렇게 나는 조금은 혼란스러운 호칭 양부(養父)에 대해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었다.그런데 어느
날 한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면담을 신청하였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가정의 아버지였다.“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서 힘든 점이 있어서 오셨나요?” 하고 여쭈자 그 단원은 “신부님, 단원
으로서가 아니라 신부님께 기도를 부탁하러 왔습니다, 제 외아들을 위해서.”“아! 정말 사랑이
많은 아버지시군요. 아이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아이가 사춘기를 겪고 있어요. 자꾸 방
황하고 마음을 못 잡아요. 부모에게 반항도 하고….”“너무 걱정하지 마셔요, 아버님. 저도 사
춘기 때는 그랬어요!”“그러셨나요? 아이를 위해 매일 지하철에서도 묵주기도를 바칩니다. 엄마
도 기도를 많이 하지요. 부부가 같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니까! 저는 직장일 하느라 기도할 시
간도 적습니다. 사실 우리 외아들은 입양했는데, 이 아들을 저의 몸에서 난 자식보다 한 번도 소
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 아이가 서운한 생각을 하게 될까 봐 더 마음을 썼습니다. 사춘
기 방황을 하며 대드는 아이에게 심하게 꾸지람하고 매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가슴이 아
팠습니다. 혹시 우리 아들이 친아버지가 아니라고 해서 더 서운한 생각을 가지면 어떻게 하나 하
고 몹시 후회하였습니다. 괴로웠고 제 한계를 느꼈습니다. 내가 그 아이의 친아버지였다면 더 잘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도 되고….”그 아버지의 눈에는 어느덧 눈물이 고여 있었습니다. 부성
애가 묻어 맺힌 눈물! 나는 나의 아버지가 생각나서 교감(交感)의 눈물을 흘렸습니다.“아버님!
저도 기도할게요! 저도 그 아이의 영적인 아버지가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저는 신부(神父) 즉 영
적인 아버지 아닙니까? 그 아이의 양부(養父)인 아버님과 신부(神父)인 제가 그 귀여운 아들을
창조하신 성부(聖父)께 마음을 모아 기도드립시다.”
그런데 얼마 뒤 그 단원은 오토바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밤늦게 사제관의 초인종
이 울렸습니다.“신부님, 저 아무개입니다. 저 아무개의 아들입니다. 신부님, 문 좀 열어주셔요!
”“누구니? 아니, 너는… 그런데 이 시각에 왜?”“아버지가 사고를 당하셨어요! 의식이 없으셔
요! 빨리 와주셔요!”그 아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고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모르
고 안타까워했다.“우리 아버지 좀 살려주셔요! 우리 아버지!”그 애와 나는 응급실로 급히 갔
다. 그 경황이 없는 가운데서도 우리는 매달리는 마음으로 묵주기도를 바치며 갔다. 응급실에 도
착해 보니 다행히 그 사이에 의식이 돌아왔고 아버지는 아들을 찾았다.“하느님, 감사합니다. 하
느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아들과 양부(養父)는 서로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
렸다.우리 모두는 손을 잡고 성부(聖父)께, 그리고 성모님께 감사기도를 드리고 돌아왔다.그날
사제관으로 돌아올 때 나에게 있어서 성 요셉의 호칭, 성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養父)
라는 칭호의 개념이 달라졌다. 양부의 길은 얼마나 힘들고 정성어린 길이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
다. 기른 사랑이 낳은 사랑보다 결코 못하지 않은 것이었다. 기른 사랑이 낳은 사랑보다 어쩌면
더 조심스럽고 고뇌해야 하고 겸손해야 하는 사랑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묵묵히 예수님을
기르시고 성모님을 보호하시며 의로운 사랑, 겸손한 사랑을 실천하신 성 요셉! 그분은 참된 양부
(養父)이셨던 것이다.어느 수녀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너무나 당연한 것은 성서에도 안 나옵
니다. 신부님!”그렇다. 처음에는 예수님을 모두들 ‘목수의 아들’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만
큼 성 요셉과 예수님은 가까운 분이셨고 함께 일하고 사랑하는 정다운 부자지간이셨다.두 분의
정이 돈독하였을 것은 너무나 당연하여 성서에도 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그분의 음지에
서의 기도와 마음 씀씀이는 앞의 예화처럼 겸손된 것이었다.얼마 전, 늠름한 대학생이 된 그 아
들은 청년 레지오 단원이 되어서 단장까지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본당에서 유명한 부자(父
子) 레지오 마리애 단원!나는 그 부자를 통해 양부(養父)의 마음을 알게 되고 나서 성 요셉 성인
을 공경하는 데 기쁨을 갖게 되었다.그 아버지의 기도 같은 겸손의 말이 기억난다.“양부(養父)
이기에 나무랄 것을 한 번 더 생각해 보곤 합니다. 또 서운한 마음이 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합니
다. 어쩌면 제가 양부이기에 아버지로서 더 철이 들 수 있나 봅니다. 이젠 부족한 저를 인정하
고 그 아이와 잘 살려고 합니다. 그래야 그 아이의 친부(親父)를 천국에 가서 만나도 두 아버지
가 서로 기쁘게 인사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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