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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신영성 바로 알기 - [교묘한 가르침의 허구(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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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1 09:47:47
2005년 6월 신영성 바로 알기

[교묘한 가르침의 허구(3)] 차동엽·노르베르토 신부 (미래사목연구소 소장)

두 번에 걸쳐서 ‘마음수련’의 사상을 담고 있는 책자에서 드러난 문제점들을 낱낱이 밝혔다.
이 종교 저 종교에서 빌려다가 쓴 개념들이 서로 코드가 맞지 않아 ‘범주의 오류’(failure of
category)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을 규명하였고, 반그리스도교적 내용을 일일이 지적하였다. 이
제 남아있는 문제점 몇 가지를 마저 규명하고자 한다.
예수님의 단호함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엄청난 오류와 왜곡 목록을 눈앞에 보여주어도 필자에게 항의편지를 한 자
매님이 ‘과연 이 문제들의 심각성을 깨달을 수 있을까’하는 점에 회의가 든다는 사실이다. 자
매님이 조금이라도 신학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다면, 아니 최소한의 상식을 가지고 있다면 자매님
은 앞에서의 논거(論據)만으로도 ‘마음수련’에 대한 필자의 글이 ‘비현실적, 비논리적, 비사
실적’이라고 했던 비판을 취하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필자의 글은 많은 피해자들의 진술
에 의거하기에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며, 엄격한 신학적 식별 기준을 따른 ‘논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자매님은 ‘마음수련’의 배후에 ‘거짓말쟁이이며 거짓말의 아비’(요한 8,44)가 있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태초부터 있어왔던 그 거짓의 명수는 결코 ‘거짓말’ 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다. 워낙 명수이기 때문에 진리(眞理)를 가장해서 거짓말을 한다. 그러기에 웬만한 사람들은 다
진리인 줄로만 안다. 마치 사람들이 인체에 유해한 ‘사카린’을 잔뜩 주입한 과일을 맛있고 건
강에 좋은 과일인 줄로 착각하듯이 말이다. 이 거짓말의 아비는 진리 ‘아흔아홉’에 거짓 ‘하
나’를 섞어서 감쪽같은 거짓말을 만든다. 논리상 전체(全體)가 진실이 아니면 그것은 ‘거짓’
이다. 마치 보약 99첩에 독약 1첩을 섞어 달이면 그것이 독약이 되듯이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의 식별을 할 때에 뉴만 추기경의 말을 액면 그대로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 것
이다. “여러분은 전체를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전체를 거부해야 한다. 축소하면 약해지고, 절단
하면 불구가 된다. 각 부분이 결합되어 전체를 이루므로, 어느 한 부분을 빼놓고서 전체를 받아
들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뉴만 추기경/Cardinal Newman:발전에 관하여)(교본 196쪽).
사이비 종교가 생기는 공식이 있다. 이 종교 저 종교에서 ‘부분적’으로 끌어다가 짜 맞추는 것
이다. 그 교주는 그것이 진리로 알리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이도 저도 아닌 거짓이 되기 십상이
다.
우리는 그 짧은 사도신경(使徒信經)이 600여 년에 걸쳐 완성되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용어 하나, 개념 하나가 잘못되어도 전체가 그르게 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쩨쩨하다. 포용성이 없다”고 해서는 안 된다. 죄인들까지도 끌어안으신 예수님이셨지만 진리
에 관한 한 예수님은 단호하기 그지없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예수님은 애제자요 수제자인
베드로의 ‘꼼수’에 서슬 퍼렇게 질정(叱正)을 가하셨다. 그때는 인정사정없었다. “사탄아, 물
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마르 8,33)
심리 현상과 영적 체험은 다른 것이다
물론, “오히려 마음수련을 통해 많은 분들이 마음의 안정을 찾고, 이혼의 위기를 극복하였다는
분도 많이 보았거든요”라는 자매님의 진술도 일면 사실에 부합할 것이다. 이를 토대로 자매님은
“뭐 그까짓 거, 몇몇 부작용을 가지고 침소봉대합니까?”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먼저, 심리적 현상과 영적 체험은 전혀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교황청에서는 1989
년 10월 15일 <그리스도교 명상의 일부 측면에 관하여 가톨릭교회의 주교들에게 보내는 서한-기
도형태>라는 문헌에서 그리스도 교회 공동체들 안에 동양의 명상법들이 확산되고 있는 현상을 기
술하면서 다음과 같이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엄격한 의미에서 보면,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나
아가기 위한 방법은 기교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니다. 기교로서의 기도 방법은 복음이 강조하고
있는 어린아이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일지 모른다. 순수한 그리스도교 신비주의는 기술과 전혀 무
관한 것이다.”
곧 명상법은 하나의 ‘기교’이지 영적 체험을 위한 ‘기도’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 기교의 결과는 하나의 심리적 현상이지 결코 영적 체험이 될 수 없다는 의미인 것이다.
심리적 현상은 단지 몸과 마음에서 느껴지는 현상이다. 하지만 영적 체험은 나와 하느님 사이에
서 이루어지는 친교, 곧 사랑의 오고감이다. 심리적인 체험은 숨쉬고 수행하는 기법에 의한 것으
로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영적(신적) 체험은 기법과는 상관이 없다. 어떤 공식
이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의 철저한 마음의 변화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이를 통
해 회개하게 되고,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다.
신흥영성운동은 하나같이 엑스터시, 곧 몽환적 행복감에 빠지게 하는 기법들을 가지고 있다. 심
리학, 두뇌과학, 최면술, 영매술 등을 총동원하여 나름대로 비법들을 갖추고 있다. 여기서 신흥
영성운동끼리의 경쟁력이 판가름된다. 일시적으로 평화, 행복, 기쁨을 느끼게 해주는 이 신비로
운 체험은 일종의 환각현상이다. 알코올, 마약 등에 취해 있을 때 느끼는 현상을 인위적으로 느
끼게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환각이 그렇듯이 환각에서 깨고 나면 오히려 현실에 대한 혐오
감, 불안, 우울증 등에 시달리게 된다. 그래서 다시 그 환각에 빠지고 싶게 만들어 악순환의 고
리가 된다. 신흥영성운동에 빠진 사람이 집을 팔아서라도 더 높은 단계의 프로그램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그리스도교적 입장에서 볼 때 이는 악령현상과 무관하지 않
은 듯하다. 신자였다가 신흥영성에 빠지는 이들이 자주 정신질환에 시달리거나 자살을 하는 이유
가 여기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몇몇 부작용’이라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알아보자. 마음수련 같은 신흥영
성운동으로 인해서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단 한 사람
’이라도 있다면 과연 이를 무시해도 되는가? 예수님께서는 100마리의 양들 가운데 단 ‘한 마리
’의 양이 길을 잃게 되어도 그 양을 찾아나서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그까짓 것 한 마리쯤
이야’ 해서는 안 된다. 그 한 마리가 소중한 것이다. 그 한 마리를 노리는 ‘야수’가 있다면,
그것에 대해 사주(四周) 경계하는 것은 지당하고 당연한 교회의 사명인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 그 이유는 생명에 관한 한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중요하게 여겨야 하기 때문
이다. 이를 우리는 생명 존중의 원칙이라 부를 수 있다. 이는 세상에서도 통하는 상식(常識)이
다. 그래서 감기약 하나가 아주 미소한 부작용을 일으켜도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것이 당연한 것
으로 관례화되고 있다. 결국 어떤 특수 성분이 인체에 부작용 내지 해악을 끼친다고 판명되면 즉
각 ‘판매중지처분’이 내려진다. 생명(生命)은 소중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세상 사람들도 이런 건전한 판단을 가지고 있을진대 인간의 소중한 영혼의 문제를 다루는 교회에
서 신흥영성운동 때문에 사람이 죽고, 고장 나고, 가정이 파탄되고, 신앙을 내동댕이치는 저 심
각한 부작용을 배포 좋게 ‘괜찮다’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참으로 죄송한 이야기지만 어느 분야의 전문가든지 그 분야의 책 한 권 읽은 비전문가를 상대하
는 것이 제일 어렵고 피하고 싶은 일이라고 한다. 왜 그런지 한 번쯤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안타깝게도 신흥영성에 빠진 이들은 공통적으로 눈에 ‘콩깍지’가 끼어서, 어떤 말로 설득을 해
도 다시 돌아오기가 힘들다. 자매님의 혜안이 열려 온전한 신앙을 회복하기를 기도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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