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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신영성 바로 알기 - 영의 식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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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1 09:49:58
2005년 8월 신영성 바로 알기

영의 식별(2) 차동엽·노르베르토 신부(미래사목연구소 소장)

바로 어제 개신교 신자인 모 교수로부터 전화상담 요청이 왔다. 강남성모병원 안과 의사였던 딸
이 단월드(단학선원)에 빠져 미국 세도나라는 곳에서 지도자로 활동하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
겠느냐는 물음이었다. 부모가 딸을 만나러 가기 전에 회유할 방법을 알고 싶어서 전화를 했다는
것이었다. 좀 불행한 얘기지만 필자는 “안됐습니다만 설득할 묘책은 없습니다”라고 말해줬다.
대신 필자가 가르쳐준 방법은 잘 꾀어서 납치를 하라는 것이었다. 왜 필자는 이런 무리수를 코치
했을까? 그것은 일단 그 정도까지 갔으면 그 딸은 뭔가에 ‘씌어있거나 사로잡혀 있다’고 판단
되었기 때문이다.
이는 사실이다. 신흥영성운동에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좋지 않은 기운에 점령당하고 만다. 이렇
게 되면 그로부터 탈출은 힘들어지게 된다. 그것이 신적 현존인 줄로 착각하게 되고, 벗어나고자
하면 정서불안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심할 때 나타는 것이 정신질환적 징후이다. 정
신질환적 징후의 배후를 알게 되면, 필자가 왜 방금 저런 무식한 처방을 내렸는지를 이해하게 될
것이다.
신흥영성운동(뉴에이지)과 정신질환
저술과 강의를 통하여 신흥영성운동에 대하여 교육을 한 이후로 필자에게는 피해자들의 상담요
청이 줄을 잇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것이 기수련이나 명상을 하다가 ‘정신질환’을
얻게 되었다는 피해사례들이었다. 본래 멀쩡했던 사람이 특수수련 프로그램을 받다가 갑자기 이
상한 현상에 시달리게 되었다는 식의 얘기들이었다. 그 중 대표적인 것들은 이미 지난 호에서 소
개한바 있다.
필자가 파악한 바에 의하면 신흥영성운동이 정신질환을 퍼트리는 온상이 되는 이유를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수련자들 가운데 이미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곧 수련장의 분위기
자체가 정신질환 바이러스가 자유롭게 나도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수련장 자체가 악한 영(靈)
의 기운이 감도는 공간이기에 그 공간에 있는 자체로 부마될 개연성이 높아진다는 얘기인 것이
다.
둘째, 수련 과정에서 겪는 탈혼(ecstasy), 자아도취(narcissism)의 상태가 부마되기에 적합한
판단정지(epoche)의 상태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 들어간 사람은 “으르렁대는 사자
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는”(1베드 5,8) 악령의 침입에 무방비 상태에 처해지게 된다. 어떤
이름을 내세우든지 모든 신흥영성운동(뉴에이지)에는 이런 프로그램들이 있다. 심신의 이완 및
평안이 바로 상품경쟁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의 첫째에서 설명된 것과 같이 악령의 기운
이 감도는 장소에서 심신의 이완은 심각한 불행을 초래하는 요인이 될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셋째, 수련의 지도자들이 영매(靈媒)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은 대개 신
통력을 갖고 싶어한다. 신통력을 위해서라면 외부로부터의 힘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들은
대체로 유일신 신관이 아닌 범(재)신, 잡신 신관을 갖고 천국이 아닌 영계(靈界)를 믿는다. 곧
정체불명의 영과 교통하는 것을 영성의 고급수준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신관에
비추어 볼 때, 이들이 소통하고 있는 것은 ‘깨달은 영’으로 행세하는 악령에 지나지 않는다.
신관이 올바로 정립되지 못하고 영적 식별 기준이 없는 이들에게는 이상의 세 가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영성체험이며 신체험이라고 착각하고 빠져 버린다. 하지만 자신의 심신에서 뭔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이미 악령에 의해 점령당한 상
태인 것이다.
악령의 장난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위의 현상은 ‘악령의 장난’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성서에 의하면 이
악령이 초래하는 결과는 신앙적인 부작용으로도 나타나고 정서적인 부작용으로도 나타날 수 있
다.
우선, 사도 바울로는 신앙적인 부작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훗날에 사람들이 거짓된 영들의 말을 듣고 악마의 교설에 미혹되어 믿음을 버릴 때가 올 것이
라고 성령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1디모 4,1).
이는 신흥영성운동에 빠진 사람들이 거의 공식처럼 거치는 과정이다. 처음에는 종래 가지고 있던
신앙과 저들의 가르침을 혼합하여 수용하다가 점점 그리스도교의 교리를 왜곡하거나 부인하는 쪽
으로 기울게 되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뭔가에 ‘씌어 있거나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정상적
인 대화로는 설득이 불가능해진다.
다음으로, 예수님은 악령이 사람을 ‘비참하게’(마태 12,45)하고 ‘광야’를 헤매게 하면서(루
가 8,29) 사람을 정서적으로 피폐화시키는 ‘거짓말의 아비’요 ‘살인자’ (요한 8,44)라고 폭
로한다.
피해자들을 만나보면 악령의 장난은 참으로 흉측하다. 정서불안에 빠트리고, 괴롭히고, 비관하
게 하고, 자살로 유인하기도 한다.
영의 식별
그렇다면 기체험과 악령체험, 그리고 성령체험을 어떻게 식별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론과 체험 양면으로 ‘기수련’ 및 ‘기치료’를 대부분 접해봤다. 개인적인 관심에서
도 그랬고 연구의 사명감 때문에도 그랬다. 거두절미하고 결론을 말한다면, 필자는 자연적인 현
상으로서의 기(氣)를 인정한다. 자연과학에서 말하는 에너지로서의 기,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
그리고 자연철학(동양철학)의 기이론 등은 실제 사실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런데 우리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이처럼 과학적으로 인정되는 자연적인 기에도 종류(種
類)와 질(質)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기의 종류 만해도 기본적으로 음양
(陰陽)과 오행(五行)에 따라서 열두 가지나 된다. 거기다가 생명의 기운인 생기(生氣)가 있는가
하면 질병의 기운인 사기(邪氣)도 있는 등, 구분하기 나름으로 천차만별인 것이 바로 기이다.
그러므로 ‘기체험’이라는 것을 하나로 싸잡아서 옳음과 그름, 선함과 악함을 가려낼 수가 없
다. 하지만 분명히 부작용이라는 것이 있다. 그 부작용의 양상은 기를 매개하거나 기수련을 전수
하는 주체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답답한 노릇이지만 사례에 따라 또는
상황에 따라 판별하는 수밖에 없다.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자.
기(氣)는 기다. 부인할 수 없는 자연 현상이다.
기체험은 기체험이다. 그냥 기체험이다. 기의 종류가 셀 수 없이 많듯이 이 기체험도 셀 수 없이
많다. 그런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좋지 않은 기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좋지 않은 기란 자연과학적인 사기(邪氣)일 수도 있고, ‘거짓된 영’의 교묘한 개입
일 수도 있다.
성령은 성령이다. 성령은 삼위일체적이기 때문에, 성령을 체험하면 반드시 성부와 성자에 대한
믿음이 생기게 되어 있다. 성부를 부인하고, 성자를 배척하는 성령은 이 세상에 없다. 하느님을
부정하고, 신자들을 냉담에 빠트리고, 정신질환자가 되게 하고, 가정을 파괴하는 ‘성령’은 없
다.
“하느님의 성령을 알아보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
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성령을 받은 사람이고 예수께서 그런 분이시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
리스도의 적대자로부터 악령을 받은 것입니다”(1요한 4,2-3).
성서의 입장은 명료하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루가
20,25). 바꾸어 말해서 기는 기이고 성령은 성령이라는 것이다. 기수련이 결코 가톨릭 영성에 보
탬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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