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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교본해설56 제 24장 레지오의 수호 성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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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1 09:51:02
2005년 9월 교본해설56 제 24장 레지오의 수호 성인들


세례자 요한 허윤석 세례자 요한 신부

신학자 오리겐은 세례자 요한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세례자 성 요한의 신비가 오늘날에도 이 세상에서 여전히 실현되고 있다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라면 누구나 세례자 요한의 정신과 덕행을 자신의 영혼 안에 받아들여, 주님 앞에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마음속의 거친 길을 바로 잡고 매끄럽게 닦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세례자 성 요한의 정신과 덕행은 여전히 주님의 오심을 앞질러 예비하는 것이다.”

주님보다 먼저 와 주님의 길을 닦고, 어두운 불신의 세상에 예언자의 목소리를 드높였던,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던 위대한 예언자 성 요한!

그의 존재와 영성이 오늘날에도 절실히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과 물질문명이 극도로 발전하고 급속한 변화를 거듭할수록 인간의 영혼은 교만과 영적 허영심, 고립과 외로움, 그리고 공허함으로 평화를 잃어만 간다.

저 2,000년 전의 세례자 성 요한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사랑의 계명 아래서 성화의 길을 가기보다는 이기주의의 팽배와 하느님이 주신 성령의 이끄심에 순명하는, 양심에 따른 생활은 위기에 처해 있다. 계속되는 전쟁과 기아 그리고 향락과 생명경시 풍조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가고 있다. 물질은 풍요하지만 분배는 빈곤하며, 과학은 발전하였지만 무기를 발전시키는 데에 사용하며, 대부분 영적인 투자보다는 쾌락의 도구로 이용되기도 한다. 수명이 연장된 반면 그 긴 기간의 생명이 과연 행복한가에 대해 아무도 긍정적인 답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노인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과연 진정한 행복 그리고 진정한 인간의 모습은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우리는 왜 태어났을까?

이러한 상황에서 세례자 성 요한의 삶이었던 그의 소명, 즉 우리 안의 굽은 길과 파인 계곡을 메우는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어야 할 우리의 소명이며 우리 존재의 목적이다.

세례자 성 요한은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저 거칠고 외로운, 고요의 바다인 광야로 나갔다. 우리 역시 그러해야 한다. 물질과 분주함이라는 ‘에집트’에서 탈출하여 홍해바다를 건너 ‘기도와 자기 성화로 건너감(파스카)’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세례자 성 요한의 일생을 바라보면 그 안에서 하느님의 위대한 섭리를 느낄 수 있다.

세례자 성 요한의 삶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위대한 섭리, 그리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

우리의 탄생은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각각의 예언자적인 소명을 갖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존재이며 이러한 하느님의 모습을 실현하기 위하여 생명을 부여받았다.

우리의 소명은 우리의 의지나 힘을 통해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권능으로 실현되는 것이다. 세례자 성 요한의 아버지 즈가리야는 아들의 탄생에 대한 예고를 천사로부터 받고 벙어리가 된다. 즉 침묵하게 된다. 그리고 하느님이 주신 이름을 아들의 이름으로 하였을 때 혀가 풀리고 하느님을 찬양하여 사람들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 집안에는 없던,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이름! 하느님이 부여해 주신 이름! 요한!

우리는 세례 때 새 이름을 받는다. 세례명! 이 얼마나 아름다운 이름인가?

세례를 받은 우리는 주님의 예언자가 되며 또 다른 이를 준비시켜 주님의 자녀와 예언자가 되도록 하는 선교사명을 받게 되었다.

세례자 요한은 바로 구약의 마지막 위대한 예언자이며, 신약을 여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세례를 베푼 주님의 세례자이다.

우리의 하느님이신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께 세례주기를 처음에는 거절한다. “제가 어떻게 당신께 세례를 줄 수 있습니까?”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가 이렇게 하여야 하느님이 기뻐하신다”라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나 자신은 누구인가? 바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 바로 하느님의 사람이다. 이 사람들을 ‘예언자, 구원의 협력자’라 부른다.

하느님의 뜻에 따를 힘을 얻으려면 우리는 먼저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묵상하며 배워나가야 한다. 성모님께서 천사의 아룀을 받고 곰곰이 묵상하셨다고 성서는 기술하고 있다. 어떠한 처지에서든 먼저 하느님의 뜻을 묵상하는 자세가 예언자의 자세이다. 이 묵상을 위하여, 우리는 여가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정말 진지하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

너무나 많은 시간을 아무 의식과 영성 없이 무의미하게 보내고 있지나 않은지?

이제는 그러한 시간들에 너무나 익숙해지고 화석처럼 굳어버려 그곳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아직도 우리는 영적으로 ‘에집트의 영적인 노예살이, 감각의 종살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처럼 이 모든 것에서 탈피하여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을 찾는가? 그 사람은 바로 왕국에 있다.” 우리는 진정 누구를, 무엇을 찾고 있는가?

신앙인이라면서 우리의 화제는 정말 화려한 물질주의 내지는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기자들의 대사나 내용을 말하면서 우리의 존재 자체는 영적인 상태나누기를 꺼려하지는 않는지?



반면 광야에는 물도 없고, 에집트처럼 맛있는 고기와 마늘이 있는 곳이 아니다. 광야는 척박하고 더운 곳이다. 하지만 그곳은 고요한 곳이며 어둠 안에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 레지오 마리애는 광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군대이다. 군대는 군복의 불편함, 순명의 불편함, 임무 수행의 불편함, 훈련을 통한 단련의 불편함 등의 ‘불편’이라는 광야를 통해 세례자 성 요한의 예언자 삶을 본받고 자신의 소명을 실현한다.

앞에서 오리겐의 말을 인용하면서 나는 세례자 성 요한의 역할, 즉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예언자라는 말이 매우 감동스럽게 느껴졌다.

우리가 세례를 받기 전에, 첫 영성체 준비를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 기도를 하였고 받았는가?

많은 이들이 예비신자 때는 열심히 세례를 준비하다가 세례를 받고 나면 챙겨주는 사람도 없고 해서 냉담! 자기 노력의 부족과 세속 유혹의 생활에 빠져 냉담하게 된다.

세례자 성 요한의 교훈은 세례로 우리의 모든 것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기도와 봉사 그리고 복음선포를 통해 늘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깨어 있는 영성을 이룩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세례를 받았지만 우리의 삶은 늘 예비신자의 열심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그러한 삶은 그리스도의 자녀로 탄생될 많은 이들을 이끄는, 광야에서 들려오는 예언자의 외침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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