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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특집/새성경 - 한국 가톨릭교회의 공용번역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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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1 09:51:32
2005년 9월 특집/새성경

한국 가톨릭교회의 공용번역본 「성경」의 출간 의미와 그 특성

김영남 다미아노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머리말

금년(2005년) 가을이면2) 비로소 한국 가톨릭교회가 독자적으로 성경 원문을 번역한 ?성경?을 갖게 될 것 같다.3) 참으로 기쁜 일이다. 이런 성경을 갖기로 1988년 한국천주교 주교회의가 결의한 지 17년 만의 일이다. 이렇게 염원하던 ?성경?의 출간을 계기로 우리 한민족 복음화의 역군인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새롭게 번역된 이 ?성경?에 대하여 설명을 할 수 있게 된 것을 진심으로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한국 가톨릭교회 공용으로 사용될 새로운 번역본의 필요성과 이 번역본의 특성을 정리해 보겠다.

1. 한국 가톨릭교회 공용으로 사용될 새로운 번역본의 필요성

"공동번역 성서도 있고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도 있는데, 왜 자꾸 새로운 번역본을 내어 신자들을 혼란스럽게 하느냐? 그리고 번역본이 여러 가지 나온다는 것은 기존 번역에 잘못된 부분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면 그동안 철석같이 믿고 살아온 성경 말씀이 권위를 잃게 되는 것이 아니냐? 잘못 번역된 곳들이 있다면, 그런 곳은 고쳐 개정판을 펴내는 것으로 만족하고, 부족한 점이 좀 있더라도 하나의 번역본을 계속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언뜻 생각하면 이런 생각이 ?무난하게? 들린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 신자들의 정서에도 맞는 것 같다. 하지만 위의 생각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옳지 않다.

첫째, 잘못된 번역은 늦었다고 생각되더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둘째,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성경을 가까이할 수 있는 길은 넓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계시헌장(22항)의 가르침도 있듯이, 교회는 성경에 계시된 메시지가 조금이라도 더 깊이, 더 많은 신자들의 마음에 전달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번역본이 있는 것이 신자들에게 도움이 된다. 성경독자의 계층이 다양하고, 그들의 이해 능력도 다양하기 때문이다. 다양한 번역문을 통해 성경 본문이 지니고 있는 심오한 의미가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넓게 보면, 다양한 성경 번역은 성경의 권위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시킨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번역본들이 비록 표현은 다양하지만 원문의 의도를 벗어나지 않는 '정확한' 번역이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한다. 무책임한 번역들이 난립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1.1. 공동번역 성서의 공헌과 한계

1.1.1. 공헌

'교회일치'를 위해 노력하라고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개신교 성서학자들과 가톨릭의 성서학자들이 함께 번역해 펴낸 이른바 ?공동번역 성서?가 우리 한국에도 1977년에 탄생했다.

공동번역 성서는 1977년(신약성서는 1971년부터) 출간된 이래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서 참으로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공동번역 성서가 있기 전에 한국 가톨릭교회는 신구약성경 전체를 담고 있는 우리말 성경을 갖고 있지 못했었다. 신약성경의 번역은 되어 있었지만 구약성경의 경우에는 선종완 신부가 번역한 책들이 일부 있었을 뿐이다.4)

공동번역 성서의 출현은 ?하느님 말씀?을 갈망하고 있던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 단비와도 같은 효과가 있었다. 공동번역의 부드럽고 매끄러운 우리말은 개신교 신자들에 비하여 성경을 잘 모르고 있던 가톨릭 신자들에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성경?을 친숙한 것이 되게 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교회생활 전체에서 ?성경?이 중심적인 자리를 찾도록 노력하고 있던 한국 가톨릭교회에 큰 도움이 되었다.

공동번역 성서는 공의회 이후 때마침 불어 닥친 교회쇄신의 분위기 속에서 새롭게 결성된 각종 신심단체와 사도직 단체들이 활성화되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이들 단체들 대부분이 그들의 사도직 활동(영적 양식)의 원천을 성체성사뿐 아니라 '성경말씀'에도 두었기 때문이다. 공동번역 성서는 특히 각종 성서 사도직 단체와 성서 잡지 및 성서관련 출판물들이 생겨나게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공동번역 성서'처럼 일반 신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전서'가 없었다면 위와 같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동안 공동번역 성서는 가톨릭교회 안에 워낙 많이 보급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공용번역본이 나오더라도 앞으로도 상당 기간 가톨릭 신자들의 사랑을 받고 읽혀질 것이다.

1.1.2. 공동번역 성서의 한계와 새로운 번역의 필요성

위에서 말한 것처럼 공동번역 성서가 한국 가톨릭교회 안에서 그토록 공헌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한국가톨릭교회 공인번역본으로 계속 사용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1) 공동번역 성서의 번역의 성격에서 오는 문제

공동번역 성서는 듣거나 읽는 신자들이 빨리 이해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의미일치 번역(의역)에 치중한 나머지, 성경 원문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너무 축소하거나 원문의 뜻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게 번역한 곳들이 많다. 각종 성서사도직 단체를 통하여 신자들이 성경을 많이 공부하면 할수록 성경을 더 깊이 그리고 더 정확하게 공부하고 싶은 열정이 생겨나, 성경 원문에 좀더 가까운 번역을 요청하게 되었다. 공동번역의 성서만으로는 만족하기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런 부족함을 공동번역 성서의 편집진도 의식하였는지 공동번역 성서(1977년 초판)의 머리말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하느님의 말씀을 인간의 언어로 옮긴다는 것은 말할 수 없이 어려운 일이다. 이 번역은 그동안의 노력의 결과를 우선 발표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할 정도로 불완전하고 미비한 점이 많음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교계와 학계의 비판을 충분히 받아들여 가며 더 깎고 다듬어서 마침내는 많은 사람들이 읽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훌륭한 번역으로 만들어 가고 싶다.?5)


2) '교회일치 번역본'이라는 '공동번역 성서'의 유명무실함

(교회일치를 적극 권장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바티칸의 ?그리스도인 일치촉진 평의회?가 개신교의 세계성서공회연합회와 신·구교 합동으로 성서를 번역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한국 가톨릭교회도 1968년에 대한성서공회와 신·구교 합동으로 성서를 번역하기로 합의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공동번역 성서'가 1977년에 출판되었다. 그런데 공동번역성서는 출간되면서부터 즉시 거의 모든 개신교 교단의 반대에 부딪쳐, 사실상 '교회일치 번역본'의 역할을 하지 못하였다.

반면에 가톨릭교회 안에서 공동번역 성서는 실질적으로 '교회공용 성경'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번역본은 명칭만 '교회일치용 성서'라는 의미에서 '공동번역'이지, 실질적으로는 개신교회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고 가톨릭교회에서만 사용되는 성경이 되어버렸다. 실질적으로 사정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는 '공동번역 성서'를 '가톨릭용'이라는 이름을 달고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저작권도 '대한성서공회'에 있다.

물론 개신교 신자들의 정서에서 볼 때, 예를 들면 그들이 '여호와' 대신에 '야훼', '하나님' 대신에 '하느님'이라는 말을 받아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는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6)

필자가 강조하여 말하고 싶은 점은, '새 번역 성경'이 교회공용 성경이 되었다고 해서, 교우들이 기존에 사용하던 성서('공동번역 성서'나 '200주년기념 신약성서')를 폐기해야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 가톨릭 교회의 공적인 자리(예컨대 전례 때)에서는 이 공용 성경이 사용되겠지만, 사적인 자리에서는 기존의 다른 번역본들이 계속 사용될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사실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어떤 번역본을 읽느냐보다는, 어떤 번역본이건 그 성경을 통해 '주님의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깨달은 그 성경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1.2.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와 '새 번역 신약성경'의 관계

'한국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 신약성서'(분도출판사)는 학문적으로 성경을 대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자주 참조할 정도로 한국의 그리스도교회 안에서 독보적인 공헌을 하고 있다.

베네딕토 수도원이 사명감을 갖고 물심양면으로 정성을 기울였고, 국내의 가톨릭 성서학자들이 오랜 시간 심혈을 기울여 번역을 하고 전문가들이 정성껏 우리말을 다듬어 펴냈기 때문에 성경을 깊이 있게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필자 자신도 강의를 할 때 많이 참조하고 있다.

주교회의 성서위원회는 낱권 형태의 '새 번역 구약성경'의 번역을 거의 마칠 즈음에(1999년 구약 완역) 크게 고심을 하게 되었다. 교회공용 성경을 지향하는 '새 번역 성경'의 신약성경 쪽 본문으로 어떤 것을 택하느냐는 문제 때문이었다. 새롭게 번역하느냐, 아니면 이미 있던 '200주년 신약성서'[개정보급판]을 사용하느냐 하는 문제였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여러 가지를 고려하며 고심한 끝에 '신약성경'도 새롭게 번역하기로 결정하였다.7) 왜 이렇게 결정되었는지는 다음에 인용되는「신약성경의 새 번역을 펴내며」라는 발간사에 잘 나타나 있다고 생각된다.

그 이유는 '새 번역 구약성경'을 번역하면서 갖고 있던 번역 흐름의 일관성 때문이었던 것 같다. "새 번역 성서 구약 번역의 흐름을 신약 새 번역으로 일관성 있게 이어 나가 한국교회가 공용할 완역본을 펴내기로 1998년 추계 총회에서 결정하고, 그 실무를 성서위원회에 위임하였다"(장익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주교, 「신약성서의 새 번역을 펴내며」). 이렇게 '200주년 신약성서'는 비록 그 본문이 ?구약성경 새 번역?과 함께 한국천주교회의 공용성경으로 채택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성경번역본은 앞에서 필자가 강조하였듯이 앞으로도 계속 교회 안팎에서 성경을 깊이 알거나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애용될 것이다.

(보충:'새 번역 성경'에 적용된 몇 가지 번역 원칙들, 예컨대 '예수님의 어투', '고유명사 표기법' 등은 '200주년 기념 신약성경'에 적용된 번역 원칙과 조화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문제이다.)

2. 「새 번역 성경」의 특성

2.1. 「새 번역 성경」의 목표

「새 번역 성경」은 '원문에 충실한 한국 가톨릭교회 공용 번역본의 완성을 목표로 한다'(구약성경 새 번역의 낱권에 나오는 일러두기의 첫자리에 나오는 말).

또한 새 번역 성경은 교회공용 성경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현대 우리말 어법과 예법에 맞는 번역을 지향한다.

2.2. 「새 번역 성경」이 돋보이는 점

첫째, '새 번역 성경'에서 가장 돋보이는 점은 번역의 '통일성' 또는 '일관성'에 있다고 생각된다. 창세기에서 묵시록에 이르는 전체 번역 과정 뒤에는 '임승필'신부와 그를 중심으로 하는 한국 천주교주교회의 성서위원회의 번역 원칙이 서 있다. 장기간에 걸친 번역임에도 불구하고 번역 원칙을 견지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독자들은 신·구약성경 전체에서 일관성 있는 번역의 경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돋보이는 점은 성경 원문에 충실하기도 하지만, 우리말 어법과 예법에 맞는 성경이 되도록 무척 노력한 점이다. '우리말'을 다듬는 과정은 '우리말 독회' 때뿐 아니라, 원문에서 번역하는 단계에서부터 시작하여 신·구약성경 전체를 합본하는 작업에 이르기까지 늘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필자가 보기에 새 번역 '성경'(특히 신약)의 문체는 전체적으로 보아, 1996년 7월부터 사용되고 있는 개정판 '미사통상문'의 문체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셋째로 돋보이는 점은 위의 목적(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어법에 맞는 아름다운 우리말 번역)을 달성하기 위하여 한국 가톨릭교회의 많은 전문가(성서학자, 국어학자, 국문학자, 작가)가 대거 참여하였다. 그런데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였기 때문에 성경 언어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측면이 많이 고려되었다는 점은 장점이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작업의 진도가 매우 지체되었고, 여러 의견이 통합되는 과정에서 때로는 일관성(통일성)이 떨어지는(어색한) 표현이 결정되기도 했다.

2.3. '공동번역'과 비교해 볼 때 크게 새로운 점들8)

1) '성서'라는 명칭 대신에 '성경'이라는 명칭(제목)을 사용한다(2005년 춘계 주교회의 때의 결정 사항). '성서'라는 명칭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서'(書)보다는 '경'(經)이 종교생활의 최고 규범인 경전을 표현하는 데 더 적합하다고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되었다.

2) 공동번역에 '야훼'라고 음역되어 있는 하느님의 이름이 '주님'이라고 번역되어 있다.

3) 몇몇 성서의 이름이 바뀌어 있다. 예컨대 '출애굽기'는 '탈출기'로, '전도서'는 '코헬렛'으로 바뀌어 있다.

4) 고유명사(인명 및 지명)가 성서 원어의 발음과 더욱 가깝게 음역되어 있다. 그러나 12사도의 이름과 같이 천주교 용어위원회에서 고정시킨 이름들은 '관용'(慣用)으로 처리하였다. 되도록이면 교육부에서 제정 고시한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려고 하였으나, 몇 가지 경우에는 예외를 두었다.

맺음말

이상으로 필자는 곧 출간될 한국 가톨릭교회의 공용 성경인 '성경'에 관하여 간략하게나마 몇 가지 중요한 점을 설명하였다.

이 글이 새로 출간되는 '성경'을 신자들이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새 번역 성경은 '원문에 충실하며', '교회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번역본, 그러기에 '우리말 어법과 예법에 잘 맞는 번역본'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번역의 결과가 혹시 두[세] 마리 토끼를 동시에 쫓는 격이 되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교회공용으로 사용하려면 '형식일치의 번역'만을 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예컨대 전례에 참석한) 일반 신자들은 성경말씀을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원천언어의 문법적 구조까지도 반드시 일치시켜야만 '정확한 번역'이라고 보는 '번역이론'은 이제 극복되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필자는 '새 번역 성경'의 가치는 우리말 어법의 중요성을 이해하면 할수록 높이 평가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공동번역 성서와 비교해 볼 때, 새로 번역된 '성경'은 분명히 낯설다. 그래서 거부감이 많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낯선 것'은 시간이 가면서 우리에게 '정든 것'으로 변할 수 있다.

예를 하나 들겠다. 1996년부터 사용하고 있는 '미사경본' 개정판이 처음 발행되었을 때에도 그에 대하여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낯설어하고', 거부감을 가졌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 미사경본의 우리말은 우리에게 '친근감 있는 것'으로 변했다. 지난번 미사경본의 '우리말'과 비교해 볼 때 현재 사용하고 있는 미사경본의 '우리말'이 얼마나 더 좋은지 보면 볼수록 더 느껴진다. 이런 결과가 나오는 이유는 개정판 미사경본이 많은 전문가들의 많은 시간과 노력의 결과물이라는 데 있다고 생각된다. 앞에서 보았듯이 새 번역 '성경'이 나오기 위해서도 참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오랜 기간 정성을 들였다. 더 나아가 거기에는 현세대뿐 아니라, 미래의 세대들을 위해서도 '하느님 말씀'이 좀더 정확하고 품위 있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전달되게 하려는 깊은 정성이 들어가 있다.

'새 번역 성경'이 나오기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하였는데, 그 중에서도 임승필 신부를 기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주교회의 성서위원회의 '새 번역 성서' 번역을 위한 전담총무로서 이 일에 혼신을 다해 정성을 쏟다가, 이미 이 세상에서 달릴 길을 다 달리고 주님께 돌아가 있다(2003년 3월 24일 선종). 그의 헌신이 없었다면 새 번역 '성경'의 출간은 아직도 십여 년은 더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필자에게는 '새 번역 성경'이라는 크고 깊은 숲 속에 임승필 신부가 거인처럼 서 있는 듯이 느껴진다.

'원문대조 독회'나 '우리말 독회'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위원들 간의 견해가 맞지 않아 격렬한 토론이 벌어져 마음마저 상하는 경우도 있었다. 전문가들이 바쁜 시간을 어렵게 내어 모인 '독회'인데, 한 시간 내내 단어 하나를 두고 토론을 하고도 결론을 내지 못할 때에는 갑갑하고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두가 '성경에 계시된 하느님 말씀'의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나온 태도였다.

아무쪼록 그 많은 시간과 노력, 그리고 기도가 동반된 가운데 준비된 '새 번역 성경'을 통해 많은 분들의 마음에 '하느님의 말씀'이 더 깊이 다가갈 수 있기를, 그래서 그들이 주 하느님을 더욱 믿고 희망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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