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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교본해설] 제24장 레지오 수호 성인들
세나뚜스 조회수:571 222.114.24.13
2016-01-21 09:52:05
[교본해설]

제24장 레지오 수호 성인들 허윤석.세례자 요한 신부

교회의 반석인 베드로
베드로 사도는 사도들의 으뜸이며 초대 교황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당신의 수위권을 주시며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습니다.
'잘 들어라.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도 풀려 있을 것이다'(마태 16,18~19).
교황기를 보면 예수님의 말씀처럼 두 개의 열쇠, 즉 하늘나라의 열쇠와 현세의 열쇠가 교차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베드로 사도를 교회의 주춧돌이며 반석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베드로는 '당신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성령의 힘으로 고백한 사도지만 동시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반한 나약하고 겁 많은 제자, 배운 것도 없는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들었을 때 베드로는 '안 됩니다. 주님'이라고 말하여 예수님께 '사탄아,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을 생각하는구나'라는 꾸지람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그리고 성령강림의 전 과정을 거치면서 변화되어 위대한 순교자가 됩니다.
베드로의 삶을 묵상하면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정말 잘 다듬어지고 똑똑하고 강한 것을 당신의 도구로 쓰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성서 말씀대로 부서진 것을 사용하심을 알게 됩니다. '당신은 부서지고 낮추어진 마음을 낮추 아니 보시나이다'
'하느님은 부서진 것들을 사용하신다'는 히브리 격언이 있습니다.
단단한 곡식이 부서져야 빵이 됩니다. 포도주도 향수도 잘게 부서짐을 통하여 만들어집니다. 단단하고 질긴 음식도 우리의 입 안에서 고르고 잘게 부서져야 소화되어 영양분으로 쓰입니다. 사람도 원숙한 인격과 신앙을 갖추려면 반드시 부서지는 과정을 밟아야 합니다. 부서진 정도가 성숙의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옛날 시골에서는 도리깨질하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거두어들인 곡식을 마당에 펼쳐놓고 사정없이 도리깨로 후려칩니다.
곡식들의 신음 소리' '왜 나만 때려?'
곡식들이 저항하는 소리' '이제 그만 좀 때려!'
그러나 사실 알고 보면 아프라고 때리는 것이 아닙니다. 미워서 때리는 것도 아닙니다. 껍데기를 벗겨내기 위해섭니다. 결국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농부이신 하느님도 우리에게 도리깨질을 하실 때가 있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말이죠.
우리는 너무 아파 소리도 못 냅니다. '왜 나만 때리느냐'고 불평도 합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워서야 누가 예수를 믿겠느냐'고 투덜댑니다. 그래도 하느님의 도리깨질은 멈추지 않습니다. 더 많이 부서지라 하심입니다. 더 많이 깨어지라 하심입니다. 더 많이 죽으라 하심입니다. 도리깨질의 강도가 하느님 사랑의 깊이입니다. 왜냐하면 부서져야 사용하시고, 부서진 만큼 쓰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장장이는 일상적인 연장을 만들기 위해서도 달구어진 쇠를 구슬땀을 흘려가며 한나절을 두들기고도 또 두들겨댑니다. 대장장이의 두들기는 소리는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마음입니다. 주 오실 날에 알곡 되게 하시려고, 하느님의 때에 더 귀하게 쓰시려고, 우리의 신음 소리도 외면하신 채 두들기고, 내려치고, 밟고, 깨뜨리고, 상하게 하고, 거절당하게 하고, 실패케 하고, 부끄럽게 하고, 초라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억울하게 하고, 결국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하십니다.

천주교는 죽음을 통하여 살고, 버림을 통하여 얻고, 부서짐을 통하여 알곡 되고, 깨어짐을 통하여 쓰임 받고, 포기함을 통하여 소유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날마다 죽어갑니다'라고 했습니다. 하루만 죽어서도 안 됩니다. 한 번만 죽어서도 안 됩니다. 한 번만 깨어져서도 안 됩니다. 한 번만 부서져서도 안 됩니다.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 때문에, 주님을 위하여, 주님과 함께 죽고 부서지고 깨어져야 합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이 힘들고 고단한 이유는 우리의 고백이 '우리는 날마다 사노라'이기 때문 아닐는지요.
왜 불쑥불쑥 혈기가 솟아날까요? 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미움이 일어날까요? 왜 주체할 수 없는 원망과 짜증에 시달릴까요? 왜 견딜 수 없는 답답함과 절망감으로 우울해질까요?
덜 죽어서 그렇습니다. 덜 깨어져서 그렇습니다. 덜 부서져서 그렇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부서지게 하심은 쓰시기 위함이며, 깨어지게 하심은 성숙하게 함이며, 죽어라 하심은 살리기 위함이며, 비참하고 초라하게 하심은 그만큼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고목에서 꽃이 피고, 반석에서 샘물 터짐이 더 귀하고 아름답듯 우리의 부서짐과 깨어짐을 통하여 성숙해지고, 쓰임 받을 때 감동과 기쁨이 그만큼 크겠지요.

어떤 때는 하느님도 '너무 하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이제는 '그만 좀 부수고 때리셔도 되지 않느냐'고 저항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만하심'의 때는 하느님이 정하시는 게 아니라 내가 정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특별대우하시고 특별하게 사랑하신다' 하시면서 종종 발가벗겨서 광화문 네 거리에 서있게 하십니다. 그렇게 비참하고 초라하게 하심은 똑바로 살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걷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보게 하심입니다. 똑바로 믿게 하심입니다.

새벽녘에 그 사랑에 목메고 눈물겨워 그분 가슴에 살포시 얼굴을 묻고 고백합니다. '이전보다 주님을 더 사랑합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자를 견책하시고 아들로 여기시는 자에게 매를 드신다'(히브 2,6). 무슨 견책이든지 그 당장에는 즐겁기보다 괴로운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견책으로 훈련받은 사람은 마침내 평화의 열매를 맺어 올바르게 살아가게 됩니다.
최악의 상황 속에서도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하여 최고의 하느님을 오늘 만나십시오.

베드로는 바로 부서지는 모습, 겸손해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교황이셨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는 마침 밤새도록 애썼지만 고기 한 마리도 못 잡은 실패감과 피곤감에 젖어있었던 때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루가5,5) 하고 대답하며 실천했던 사도입니다. 이러한 교황 베드로에게 우리 레지오 마리애는 존경과 기도를 드립니다. 그분의 아름다움인 겸손과 다시 일어서는 굳건한 믿음을 본받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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