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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내인생의 레지오 - 32년을 하루같이
세나뚜스 조회수:557 222.114.24.13
2016-01-21 09:54:28
내 인생의 레지오

32년을 하루같이

송경희·엘리사벳

저는 오늘 32년 동안 저를 영적으로 돌보아주신 저의 대모님인 이레네 님을 찾아가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환자방문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여든여덟 고령에도 오직 성모님을 바라보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계시는 대모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저는 대모님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낸 제 인생의 레지오 32년을 돌아보았습니다. 저는 남들에 비해서 좀 늦은 나이에 세례를 받았습니다. 스물네 살에 불교 집안의 남자와 결혼하고 12년 후 남편이 입교했습니다. 영세한 남편의 권유로 일 년 뒤인 1974년 부활절에 안동 목성동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제가 세례받자 바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가입을 권유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는 레지오가 방송국에서 노래하는 합창단으로 알고 노래는 못한다고 피해 다녔어요. 저는 정말 노래를 못하거든요.
후에 어쩔 수 없이 레지오에 입단하여 주회를 거듭하면서 뗏세라에 적힌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로 시작되는 기도문에 반했어요. 뗏세라에는 제가 드리고 싶은 기도가 다 들어 있었어요. 저는 얇은 뗏세라 종이가 찢어질까봐 양장점에 가서는 예쁜 헝겊을 얻어 와 풀로 발라서 소중하게 가지고 다니며 기도했습니다.
대전에서 부잣집 외동딸로 곱게 성장한 저는 레지오 활동을 통해서 전혀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고 ‘인간’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것만 골라서 먹고 입고 자면서 남을 부리기만 하고 살던 제가 방문활동 중 만난 어려운 사람들의 삶을 통해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저는 그때까지 그렇게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훌륭하고 착한 사람들과 모범이 되는 행복한 가정이 많다는 것도 알았지요. 어려운 사람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마다 저는 예수님의 사랑과 성모님의 은총을 느꼈고 받은 것이 너무 많은 데 죄책감도 들었습니다. 32년이 지난 지금 생각하면 그때 성모님이 부르시지 않았다면 제가 얼마나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고 있을지….
저는 정말이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레지오 단원이 되어 대모님을 따라서 성당을 제집처럼 생각하고 살았습니다. 그 뒤 수많은 영세자의 대모가 되었고 제 아이들 셋과 며느리, 손자손녀 모두 세례를 받아 성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지난 9월에 원고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는 마침 교구에서 열린 두봉 주교님 피정에 참석해 평소에 존경하는 두봉 주교님께 사정을 말씀드렸습니다. 주교님께서는 막 웃으시면서 “엘리사벳의 말대로 그것은 성모님과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고 우리는 그것을 널리 알려야 한다. 성모님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아무 염려말고 한 대로, 사실대로 쓰면 된다”고 사진까지 함께 찍어 주셨어요. 그래서 성모님을 믿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제가 성모님 군대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한 일이 연령회 상가봉사였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대모님께서 부르셨고 단장인 대모님의 지시에 따라 기꺼이 그 일을 도와드렸습니다. 상가봉사가 가장 효과적인 전교라는 대모님의 말씀을 염두에 두기도 했지만 저는 그 일이 처음부터 좋았어요. 일손이 부족한 가난한 상가에서는 주방봉사까지 해가면서 밤새워 솜씨 좋은 단원들과 함께 상복과 수의도 만들었지요.
제가 처음 만난 시신은 임신 8개월인 아기엄마였습니다. 임신중독으로 아기를 뱃속에 둔 채로 죽은 그 모습이 어찌나 가엾던지 저는 일 년 동안 매일 그 아기와 엄마를 위해서 연도를 드렸습니다. 그 이후부터 제가 만져서 보낸 영혼들을 위해서 일 년 동안 매일 연도를 드렸지만 지금은 연령을 위한 짧은 기도만 바칩니다. 남편과 주위 사람들은 무섭고 힘들지 않느냐고 걱정을 했지만 저는 시신을 깨끗이 닦아 화장해 옷을 입히고 집에 돌아오면 마치 숙제를 끝낸 학생처럼 그렇게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교우는 물론이고 타종교인, 비종교인 가리지 않고 저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디나 달려가서 아무런 대가 없이 그 일을 기꺼이 해주었습니다. 어느 날 불교 신자를 염습하게 되었는데 문 밖에서는 스님이 목탁을 두드리면서 염불을 외우며 “얼굴을 닦아라, 옷을 입혀라” 지시를 하고 저희들은 스님의 지시에 따라 염을 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지요. 그때 스님께서 하시던 말씀이 지금도 귓가에 쟁쟁합니다.
“천주교 보살님들은 이렇게 신자, 비신자 가리지 않고 어려운 일을 마다않고 정성을 다하시는데 우리도 본받아야겠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비신자들 사이에서도 천주교에서 시신처리를 하면 최선을 다해 정성스럽게 한다고 해서 부탁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연락이 오면 자다가도 단장님과 우리 베로니카, 아셀라 자매와 함께 달려가 임종을 돕고 장례절차가 끝날 때까지 정성껏 도왔지만 상가에서 대접하는 물 한 잔 마시지 않고 일이 끝나면 가만히 빠져나왔지요.
잘한 일보다 잘못한 일이 더 많은데도 성모님 군대가 된 후 한 번도 결석을 하지 않았다고 지난 연차 친목회에서는 좋은 상품도 탔어요. 돌이켜 보면 32년의 세월이 정말 하루같은데 어느덧 제 나이가 일흔이 넘어서 모든 레지오 활동의 뒤편에 서게 되었습니다. 가장 행복했던 주회로는 몇 년 전 이스라엘에 성지순례 가서 했던 주회합이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는 LA에서 가진 회합입니다. 보름 동안의 성지순례를 떠나며 레지오 회합을 걱정하는 저에게 “성모님이 다 알아서 해주신다”며 염려말라고 하신 신부님 말씀처럼 저희는 그 성스러운 예루살렘에서 주회합을 하는 은총을 받았지요.
또 남편과 함께 미국에 가서 나이아가라 폭포구경을 하려는데, 저는 오로지 한인교회에 가서 주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나이아가라 폭포고 뭐고 레지오 주회를 할 수 있는 LA 한인교회로 가야 한다고 주장하여 남편까지 나이아가라 폭포를 못 보게 한 기억이 납니다.
이번 주회가 끝나면 다음 주를 준비하면서 그렇게 레지오를 제 인생의 즐거움으로 알았을 뿐 평생 개근을 하겠다는 작정을 한 것도 아닙니다. 저는 오직 오늘 제가 참석한 주회에 충실하고 다음 주를 기다릴 뿐이었지만 모든 것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교 신자였던 저의 시어머님도 결국 세례받으시고 신앙생활하시다가 돌아가셨는데, 가시기 전 얼마 동안은 잠시도 저를 놓지 않으셔서 어머님을 두고 주회에 가기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성모님, 제가 주회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어머님을 주무시게 해주세요.”
“성모님, 제가 주회 마치고 집에 갈 때 택시를 빨리 잡게 해주세요.”
저는 그때마다 간절히 화살기도를 했고 성모님은 들어주셨지요.
저의 32년 레지오 인생에서 매 순간 저를 지켜주시는 성모님과 예수님의 도움이 없었다면 과연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을까요? 제가 만약 잘한 게 있다면 그 모든 것이 성모님의 보살핌이라고 믿습니다. 또 어려움이 닥친다면 저의 믿음이 부족한 탓에 내리는 꾸중이라고 생각하고 남은 레지오 인생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성모님께 매달릴 겁니다. 성모님께서 언제까지나 이 늙고 하잘 것 없는 엘리사벳을 사랑해 주시고 좋은 날에 부르셔서 당신 곁에 영원히 머무르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안동 용상동 성당 창조주의 어머니 P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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