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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내인생의 레지오 - 다시 걷게 된 두 다리로 주님을 전하리라
세나뚜스 조회수:632 222.114.24.13
2016-01-21 09:56:49
내 인생의 레지오

다시 걷게 된 두 다리로 주님을 전하리라

선종순·세라피나

주님의 자녀로 태어난 지도 어느덧 십 년이란 세월이 훌쩍 넘었다.
고향인 부산에서 남편 직장을 따라 일가친척 하나 없는 낯선 땅 대구로 이사를 오게 된 나는 생활이 어려운 관계로 일터로 나갈 수밖에 없었고 뒤를 돌아볼 겨를 없이 앞만 보고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던 나에게 큰 시련이 닥쳐왔다. 1993년 봄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였던 것이다. 그 당시 나는 야쿠르트 배달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널목을 건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의식을 잃고 말았다. 나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의식을 찾았을 때는 병원 응급실이었고 우리 아이들은 옆에서 “엄마~” 하고 부르며 울고 있었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옛날 같으면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로 많이 다쳤다며 일단 수술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여태 열심히 일만 하며 착하게 살아왔는데 나한테 왜 이런 시련이 닥치는지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더구나 두 아이에게는 아직 엄마 손이 필요했고, 남편은 일 때문에 중국에 가 있는 상황에서 나에게는 너무 가혹한 시련이었다. 아마 그때 처음으로 하느님을 생각했던 것 같다. “만약 하느님이 계시다면 저를 다시 두 발로 걷게 해주십시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당신이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나는 필사적으로 하느님께 매달리기 시작했다.

병원에서 여러 달을 지낸 후 어느 날, 너무 답답함이 느껴져 휠체어를 타고 병실을 나와 휴게실로 가 보았다. 휴게실에 계시던 어느 아주머님께서 나를 보더니 “다리를 많이 다치셨네요” 하면서 내 다리를 주물러 주셨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드리며 그 아주머니의 손을 보았는데 묵주반지를 끼고 있었다. “혹시 성당에 다니세요?” 하고 물어보았더니 화원성당에 다닌다며 하느님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퇴원하면 꼭 성당에 다니라고 권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날 휴게실로 이끈 것도 그 자매를 만나라는 하느님의 뜻이었던 것 같다.
나는 목발을 짚은 채 퇴원을 했고 걷기 위해 계속 물리치료를 받으러 다녔다. 그리고 집 근처에 성당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하지만 내 눈에는 성당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만 있기가 너무 답답해서 읽을거리라도 찾기 위해 아파트 도서실에 한번 가 보았다. 그곳에 한 자매님이 계시길래 혹시 이 근처에 성당에 있냐고 물었더니 반가워하는 얼굴로 얼마 전에 동촌성당에서 분당한 용계성당 있다고 하며 자기도 가톨릭 신자라고 하였다. 나는 너무 반가운 마음에 “성당에 가고 싶은데 성당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나를 성당으로 이끌어 주세요”라고 말했고, 그렇게 해서 유스티나 자매의 인도로 천주교에 입교를 하게 되었다.
성당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온전치는 못했지만 아픈 다리가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목발을 짚지 않고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주님께 너무너무 감사하며 당신이 원하시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기도드렸다.
1994년 12월 3일 주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된 그날의 기쁨과 감동을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비록 임대 건물 지하 성당에서의 세례식이었지만 나에게 그 성전은 천국이었다.

성당에 가는 것이 너무 즐거웠던 나는 아직 온전치 못한 다리를 이끌고 새벽마다 성당에 가서 조배를 했다.
그러던 어느 새벽 루치아 자매님을 만나 레지오에 입단하게 되었다. 레지오는 나에게 영적으로 더욱 성숙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주었다.
‘상지의 옥좌’ 쁘레시디움에 입단한 나는 활동을 통해 성당 신자들과 점점 가까워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성당 여러 단체에도 가입해 봉사하게 되었다. 지금은 분단하여 ‘사랑의 샘’ 쁘레시디움에서 부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가장 열심히 봉사하는 단체는 사회복지회다. 탱자와 콩나물을 팔아 성전 건립 기금을 마련하기도 하고 후원업체를 찾아다니면서 칼국수, 떡볶이, 떡국 등 여러 식품을 거두어 차량봉사자가 없을 때는 리어카에 싣고 직접 끌면서 30가구가 넘는 집을 찾아다니면서 나누어주기도 한다. 외로운 독거노인들에게는 말벗이 되어 드리기도 하고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의료 봉사도 하며 하느님을 전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하루종일 발품을 팔다 보면 몸은 힘들지만 이것 또한 다시 걸을 수 있게 해주신 주님의 은총으로 생각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봉사하고 있다.

나는 이 좋으신 하느님을 이웃에게 널리널리 전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부터 선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족들에게 성당에 가자고 말하였다. 다행히 딸아이는 어릴 적 성당에 다닌 경험이 있는 탓에 별 무리 없이 입교해 주어 세례받고 9년째 열심히 교리교사로 활동하고 있고, 남편 또한 세례받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아들녀석이 문제였다. 이미 자기 가치관이 서버린 아들은 신앙만큼은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말보다는 기도가 우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매일 아들을 위해 기도했다. 아들도 하느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는지 재작년 부활절에 미카엘이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받았다. 그렇게 해서 복된 성가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소록도 나환자촌을 방문했을 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마태 5,3) 하신 주님의 말씀을 비로소 절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천사와 같이 행복한 모습을 하고 있는 그들을 볼 때 ‘우리가 원하는 인생의 등불, 즉 그리스도의 향기가 여기에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고, 세상에 빛이 되고 소금이 되어 삶의 원동력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된다. 나는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그리스도의 향기를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나누고 싶었다.

나는 아침마다 주님께 “오늘도 새날이 밝게 해주시고 저에게 건강을 주시고 일할 수 있는 힘을 주시어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도 아무런 사고 없이 열심히 일하며 주님께 봉헌하는 하루가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드린다.
주님께서 나에게 다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게 해주신 이유가 아직은 사람들에게 나의 두 발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내 두 발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달려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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