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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특집 - 아버지의 교회
세나뚜스 조회수:1163 222.114.24.13
2016-01-21 10:08:58
아버지의 교회
송영오 베네딕토 신부 -수원교구 인덕원성당 주임 / 가정사목연구소 소장



나는 열성적인 신앙을 지니신 아버지께 어려서부터 세뇌(洗腦)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주셨으니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거두어 가신들 무슨 원망을 할 수 있는가?” 하시며 늘 구약시대의 ‘욥’성인을 당신 신앙의 기초로 생각하신 아버지는 양복보다는 가죽점퍼를 즐겨 입으시고, 구두보다는 운동화를 즐겨 신으시는 매우 털털하신 분이다.
아버지는 늘 오토바이 기름통에 나를 태우고 평일미사에 다니셨고, 내가 첫영성체를 하는 날부터 제단에서 복사 서는 법을 몸소 가르치셨으며 입버릇처럼 신부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신부가 되는 것, 그것이 곧 당신 신앙의 완성이요 소원이셨고 나 또한 어린 시절부터 신부가 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성장하였다. 사춘기 때부터는 여자친구와 좀 가까워만 져도 독신으로 살아야 하는 사제의 길에 대하여 고민하였고 항상 사제직을 향한 생각을 하는 삶이었다.
40대 초반에 본당 총회장이 되신 아버지는 본당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셨고 궂은일은 언제나 도맡아 처리하시는 해결사셨다. 본당의 어느 집에라도 초상(初喪)이 나면 늘 우리 집으로 연락이 왔고, 구성진 아버지의 연도 소리는 인간문화재 그 자체였으며, 돌아가신 분을 위한 염습(殮襲)은 하느님께서 아버지께 내려주신 천직으로 생각하셨다.

그런데 이런 아버님에게 고약한 문제가 있었다. 초임 본당신부로 오는 젊은 신부들에게 술을 너무 많이 권해서 곤경에 빠뜨리는가 하면 혹 술이 센 신부들을 만날 양이면 ‘신부가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셔서 어떻게 사목을 하느냐’는 식으로 입장을 난처하게 만드셨고 다혈질적 성격과 물불 가리지 않는 행동으로 본당신부님과 수녀님들을 힘들게 하셔서 언제부터인가 ‘송 주교’라는 별칭을 얻게 되셨는데, 정말로 주교님도 인정하시는 수원교구의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젊은 시절, 본당을 신설할 때 구슬땀을 흘려가며 몸소 질통을 짊어지고 자재를 날라 지은 성당, 신자들이 함께 콘크리트를 비벼서 철근 콘크리트로 튼튼하게 세운 교육관, 업자들에게 욕설을 퍼부어 가면서 지은 사제관·수녀원 등 세워진 건물 하나하나가 아버지의 손때가 묻어 있는 것들이었고 성당 구석구석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훤히 꿰고 계시면서 아직도 장호원성당의 산 증인으로서 당신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계신다.

나는 어린 시절 열성적이면서도 고약스러운 아버지를 뵈면서 ‘이다음에 신부가 되면 우리 아버지 같은 회장님은 만나지 말아야 할 텐데…’ 하고 걱정하며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결국 아버지의 소원대로 신부가 될 수 있었다. 신부가 되고 세월이 지나면서 내가 얼마나 많은 부분이 아버지를 닮아 있는지를 자주 느끼며 살아간다. 나의 사제적 열성은 물론이고 고약한 심보와 고집 등 모든 것이 아버지를 그대로 빼닮은 것이다. 가끔씩 고향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어쩌면 말투나 표정까지도 그렇게 아버지를 닮아 있는지 새삼 놀라며 “나도 아버지와 똑같이 하고 있겠지!” 하고 습관처럼 혼자 넋두리를 한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아버지처럼 점점 노화되어가는 건물들은 종합적인 계획으로 재건축을 해야 하는 시기에 와 있는데, 아버님은 당신이 일구어 놓은 건물들을 내어놓지 못하신다.
얼마 전 당신 특유의 고집을 내세우면서, 때로는 “IMF 금융위기에 재건축이라니?”라고 대의명분까지 내세우면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건물을 부수지 못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에 세월의 무상함을 느낀다.
나는 안다. 그 건물들에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온 젊음을 바쳐 사랑한 당신의 교회를 지킬 수 있을 때까지 홀로 지키고 싶으신 것이다. 당신 아들 같은 본당신부의 어려운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고 누구보다 신부들을 아끼고 교회를 사랑하시는 나의 아버지 ‘송 주교’이시니까.

장호원 그곳에 가면 오늘도 칠십이 넘은 노구(老軀)를 이끌고 힘찬 비질 소리로 새벽을 여시고 아침이면 묵주기도를 바치며 수천 번의 털이개질 속으로 당신의 한숨을 감추고 그릇가게를 지키는 아버지가 계시기에 나의 사제직은 굳건하다.
예수 성심 성월을 맞이하여 다시 한번 주님의 열정을 닮을 수 있도록 길러주시고 이렇게 사제로서 가정지킴이가 되도록 키워주심에 감사드린다.

“아버지!
‘송 주교’라는 별칭을 가진 아버지의 교회는 젊은 시절 땀방울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 당신의 신앙으로 일구어낸 당신의 아들 송 신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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