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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교본해설 - 레지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가?
세나뚜스 조회수:563 222.114.24.13
2016-01-21 10:09:29
레지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가?

-신문호 가브리엘 신부(불광동 성당 부주임)

이번 달에는 ‘용기와 희생으로 바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성모님이 지니신 그 높은 믿음의 덕’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네 번에 걸친 ‘레지오의 정신’ 즉 “레지오는 어떤 마음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가?”의 10가지 덕을 마무리할 것입니다.

9. 용기와 희생으로 바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라 Amor erga Deum)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선 성경과 여러 성인들이 여러 곳에서 자주 다양한 문체로 설명·주석하고, 우리의 대화에 인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사랑이란 단어를 너무도 쉽게 혼동, 혼용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생각하곤 합니다.
「내 안의 위대한 혁명, 서번트 리더십」(The Servant Leadership, 제임스 C. 헌터 지음, 김광수 옮김, 시대의 창, 139~144쪽 참조)과 존 앨런 리의 1973, 1976년도의 논문에 따라 사랑의 종류(Naver 오픈사전 중 심리학, 사랑편, ‘사랑의 종류’ 참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 내리고 있습니다.
“영어에서는 사랑을 매우 한정된 의미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상당 부분은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리스 사람들은 사랑의 다각적인 현상을 몇 가지 색다른 용어로 정의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에로스(Eros)’입니다. 영어 단어인 ‘에로틱(Erotic)’의 어원으로, 완전히 육체적인 성적 매력에 대한 호감 또는 욕망, 갈구 등의 감정을 의미합니다.
또 ‘루두스(Ludus)’는 장난스럽고 우연한 사랑을 말합니다. 서로 상대방에게 관심은 별로 없지만 만남이 재미있고 즐거우니까 좋아하는 감정을 말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특별한 마음에서의 상호친교 없이 어느 정도 서로에게 의존함을 피하면서 관계를 유지하는 상태입니다.
다음은 ‘스토르게(Storge)’입니다. 이는 특히 가족 사이의 친밀감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신약에서 이 두 단어를 찾아볼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필로스(Philos)’는 상호간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즉 ‘네가 내게 잘하면 나도 너에게 잘하겠다’라는 식의 조건적 사랑입니다.
마지막, 사랑으로 표현되는 그리스 단어는 ‘아가페(Agape)’입니다. 아가페는 ‘아가파오(Agapao)’라는 동사에서 유래한 명사로, 책임에 구애됨 없이 상대방에 대한 행위에 바탕을 둔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신약성경에서 언급하셨던 사랑이 바로 이 ‘아가페’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들에게 “사랑이 무엇이지요?” 질문했을 때 어느 정도 인지능력이 있는 어린아이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그 대답으로 아가페적인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그렇지만 질문하는 우리나 그 질문에 아가페적인 사랑으로 대답하는 사람 대부분이 실제의 삶에 있어서는 육체적인 사랑, 에로스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사랑의 범위 안에서 갈등합니다. 다시 말해 사랑을 몰라서 무조건적인 사랑을 실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는 있지만 제대로 실천을 못하는 우리들은 훈련과 그 선택에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 군대의 총사령관인 성모님은 많은 어려움과 힘든 상황 속에서도 사랑할 용기를 잃지 않으십니다. 사랑의 극치는 죽음을 통해 보여주는 그리스도적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도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자신의 전 생애를 희생으로 바치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새 계명, 즉 하느님께 대한 사랑(Amor erga Deum)과 이웃에 대한 사랑(Amor erga proximum)을 실천한 신앙인의 최상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0. 성모님이 지니신 믿음(라 Fides)의 덕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가톨릭교회 교리서(Catechismus Catholicae Ecclesiae,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발행)에는 신앙이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습니다. “신앙이란 당신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내어주시며 동시에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 인간에게 풍요한 빛을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인간의 응답이며”(26항), “신앙은 하느님의 은총으로 움직여진 의지의 명령에 따라, 하느님의 진리에 동의하는 지성적 행위이다”(155항).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과 계명에 대해 ‘아멘’이라고 말하는 것이며, 무한한 사랑과 완전한 충실성의 ‘아멘’이신 분께 완전히 신뢰하는 것이다”(1064항).
다시 말해 믿음이란 하느님이신 분이 먼저 당신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 계시하신 바에 대해 우리 인간들이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동의와 확신에 찬 응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하느님 사랑을 믿는 것입니다. 가톨릭교회 교리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전능하다는 것을 믿지 않고서, 어떻게 성부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성자께서 우리를 구속하시고, 성령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는가?”(278항) “‘믿는다’고 하는 것은 무한한 사랑과 완전한 충실성의 ‘아멘’이신 분께 완전히 신뢰하는 것으로”(1064항) “믿음은 사랑 안에서 그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 안에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게 된다”(2614항).
성모님은 자신의 전 생애를 하느님께 ‘네’ 하며 사셨는데, 자신이 잘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항상 당신의 마음속에 간직하시며(루카 2,48~51 참조),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시키는 것과 또한 다른 이들도 그것을 따르도록 권고하시는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를 가지셨습니다(카나의 혼인잔치, 요한 2,1~12).
그러므로 레지오는 하느님께 절대적 확신을 가지신 성모님처럼 믿음의 덕의 갑옷으로 무장을 하고 하느님께로 향하는 성덕의 길로 향해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성모님의 사랑과 믿음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레지오 단원들은 교본이 이르는 대로 하기도 전에 포기함 없이 “어떤 일이든지 모두 해보려고 하고 할 만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불평은 결코 하지 않는다”고 말해야 하겠습니다(교본 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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