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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성경과 함께 - 요한 복음서(해제와 묵상)
세나뚜스 조회수:505 222.114.24.13
2016-01-21 10:10:24
 요한복음서 - 해제(解題)와 묵상 -

안병철 베드로 신부(서울 노원성당 주임,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수)


3. 요한의 증언(1,6~8)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1,6-8).

여기서는 요한을 로고스의 증언자로 소개하고 있다.
시적인 형태의 서문에 삽입된 요한의 증언은 역사적 서문에서 소개되고 있는 증언과(1,19-34) 대조해서 보면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요한이 행한 증언과 그 증언의 내용은 매우 흡사한 형태로 표명되고 있다. 여기서 보면 요한은 “보내어진 사람”이고 “빛을 증언하러 왔다”(1,7). 후자의 내용에서 보면 요한은 “파견되었고”(1,33) “물로 세례를 베풀러 왔다”(1,31). 서문에서 볼 때 요한의 목적은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데” 있다(1,7). 역사적 서문에서 볼 때 그의 목적은 “저분께서 이스라엘에 알려지시게 하려는 데” 있다(1,31).
살펴본 것처럼 시적인 형태의 서문과 역사적 서문에 소개된 내용이 서로 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서 차이점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며, 시적인 형태의 서문에서의 요한의 증언이 역사적 서문에서처럼 나자렛 예수에 대해 행하여진 것이라고 성급하게 결론을 내려서도 안 될 것이다. 그런 식의 결론은 요한 복음서 서문이 이렇게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서 말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만 가능하지 않을까 판단된다. 사실상 아직까지는 강생하신 로고스가 문제시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 아닌가! 15절에서 소개되고 있는 요한의 증언이 비로소 나자렛 예수에 관계되는 증언이 될 것이다. 6~8절에 나오는 증언은 직접적으로 로고스에 대해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에 대해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 인격으로서의 요한은 세상을 비추는 로고스의 조명자적인 역할이 알려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느님께로부터 파견된 증언자이다. 우리는 요한의 그러한 모습을 직시함으로써 6~8절의 방향성을 가늠해 보게 된다. 즉 6~8절은 요한이 행한 증언의 중요성을 보편화, 일반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요한 복음서가 전해주는 이야기 안에서 보면 요한은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주시는 예수님에게로 몰려가고 있다”고 하는 제자들의 불평 섞인 말을 들으면서 증언하고 있다(3,28 이하).
서문에서는 빛에 대한 순수한 증언이 문제의 핵심으로 나타난다. 요한 복음서 이야기 속에서 요한은 이스라엘에 사람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분이 현존하고 계심을 알려주어야만 하지만, 서문에서의 요한은 많은 사람들을 신앙의 길로 이끌어가야만 한다.

요한이 행한 증언의 실질적인 목적은 “모든 이가 믿도록” 하는 데 있다. 하지만 믿음의 대상은 분명하게 명시되고 있지는 않다. ‘믿는다’라는 동사는 12절에서의 의미와 동일한 의미를 내포할 것임에 틀림없기는 하나, 로고스를 그 자체로 깨닫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본문에서는 로고스가 세상에서 비추는 빛, 곧 4절에서 살펴본 바 있는 생명의 빛이심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증언자인 요한은 아직도 땅을 위협하고 있는(1,5) 어두움 앞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 빛의 현존과 승리를 법적으로 주장하기 위해 떨쳐 나서야만 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알아들어야 할 것인가?
서문 초기 부분에서부터 나타나는 보편주의 사고는 ‘모든 사람’이라는 용어를 통해서 구체적으로 표명되고 있는데, ‘모든 사람’이라는 말 속에는 역사적 실존 인물인 예수님과 동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공간적인 국경을 넘어 모든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다. 무엇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
8ㄱ절에서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라는 표현으로 반세례적인 논쟁의 일단이 어떤 것인지 분별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본질은 그것이 아니라 다른 데 있다. 복음서 저자는 그토록 중대한 주장을 통해 그 인물을 로고스와 인간 사이의 합법적인 중개자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로고스이신 그 빛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음을 증언하기 위해 하느님으로 파견된 그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15절에서와 달리 여기서는 요한의 증언이 누구에 대한 것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 사실은 그가 6~8절에서부터 ‘증언자’로서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무게를 지니게 된다. 요한 복음서 서문의 후반부에 가서 보면, 요한이 증언한 내용이 예수님이라는 인격에 해당된다는 것을 밝히게 될 것이다. 6~8절에서는 요한이라는 인물을 역사적 실존을 하고 있는 존재로 소개하고 있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세례자 요한에 관해서는 6~8절과 15절 그리고 그에 관계되는 역사적 서문이라 할 수 있는 19~34절을 비교해 보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서문이라 일컬어지는 19~34절에서 보면 요한은 이틀에 걸쳐서 증언하고 있는 것으로 소개되는데, 그 모습은 요한 복음서 서문에서 두 번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는 요한의 증언 모습과 유사하다.
이튿날 요한은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하늘에서 내려오시어 그분 위에 머무시는 것을 본 이후에 그분에 대해서 증언하고 있다(1,29~34). 그런 점에서 그 증언은 1,15에서의 증언과 상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날 요한은 이스라엘이 기다려왔던 분이 이미 현존하셨고 또 현존하고 계시지만 아직은 누구인지가 밝혀지지 않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1,19~28). 요한은 그분이 자기보다 더 고귀한 품위를 지니고 계신 분이라는 점만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1,27). 그런데 거기서 요한은 이미 오래된 예언, 곧 구세주의 도래를 이미 예고한 바 있고, 그 방향으로 향해 있던 계시의 시대를 돌이켜 보게 하는 ‘소리’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요한이 6~8절에서 빛에 대해서 해야만 하는 증언은 증언자로서의 요한 스스로가 직접 메시아를 만나 알아보기 전에는 광야에서 외쳤던(1,23) 증언과 상통할 수 있을 것이다.
요한은 1,19~28에서 자신을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에 앞서 전해져왔던 예언 전승, 곧 하느님의 구원이 인간에게 다가오고 있음을 예고한 예언자들의 예고 내용 모두를 현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요한은 6~8절에서 역사의 흐름 속에서 하느님의 빛이 세상에 현존하고 있음을 전하도록 책임을 맡은 모든 증언자들을 하나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표상해 주고 있다. 그의 모습은 한 개인이나 특정한 시대에 행한 그의 역할로 축소되지 않는다. 그가 전한 메시지는 보편적 중요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로고스의 강생이 있기 전 시기에 사람들로 하여금 이미 그들을 비추기 시작한 빛을 향하게 할 책임을 맡은 증언자들을 부족함이 없이 내세우셨다. 그런 차원에서 요한 복음서 본문도 요한이 증언하기 위해 ‘왔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1,6). 그러나 그의 직분은 역사의 과정 안에서 수행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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