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운영관리 월간 레지오 마리애 / 빛

월간 레지오 마리애 / 빛

게시글 검색
[2006년] 9월 내 인생의 레지오 - 권말분 요셉피나
세나뚜스 조회수:883 222.114.24.13
2016-01-21 10:15:34
하느님과의 만남

권말분 · 요셉피나(청주 Re. 단장)

나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은 가정에서 육남매의 막내로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서 1976년 4월에 남편과 약혼을 하면서 시댁 식구들이 천주교 신자라는 것을 알게 돠었다. 칠남매 중 유일하게 남편만이 세례를 받지 않은(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나 있어서) 사람이었다. 잠시 사귀다가 1976년 11월 23일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을 하고 맞은 첫 주일 아침에 시어머니께서는 이렇게 엄명을 내리셨다.

“어서 예쁘게 분단장하거라. 성당에 가게.”

나는 이렇게 핑계를 댔다. “어머니, 빨래해야 되는데요.”

어머니는 빨래가 지금 무슨 해당이냐며 무조건 준비하라신다. ‘시골 언덕 자그만 공소에 엊그제 시집온 새색시가 가면 필경 사람들이 쳐다볼 텐데….’ 나는 준비를 하고서 용기를 내어 한 번 더 어머니께 “어머니, 다음에 가면 안 되겠습니까?” 그러나 대답은 똑같았다.

나는 이렇게 시집간 첫 주일부터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해, 아니 강압으로 난생처음 성당이라는 곳에 가게 되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나 1977년 1월 5일 군장교였던 남편을 따라 신접살림을 떠나는 나에게 어머니는 또다시 엄명을 내리셨다.

“너는 우리 집 맏며느리다. 나에게 잘못하는 것은 다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성당에 나가지 않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나를 위해서라도 성당엔 꼭 나가야 한다”면서 수저 하나 챙겨 주지 않으시고, 낡은 기도서와 검은 미사보 하나를 건네주셨다. “부모님의 뜻을 거역해서는 안 된다”고 늘 교육받아온 나는 어머니가 곁에서 지키지도 강압을 하지도 않았지만 경기도 김포읍 지경리에 살면서 하느님의 집을 찾았고, 성당에 대해, 교리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여 무엄하게도 써서는 안 되는 미사보를 쓰고 이해하지 못하는 의식(전례)을 따라 하면서 한 주도 빠짐없이 어머니의 뜻을 이해하려고 애썼다.

어느 주일, 첫아이를 가진 무거운 몸으로 혼자서 성당을 가다가 남편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남편에게 어머니에게 배운 대로 강요 아닌 협박을 했다. “나도 이제부터는 성당에 나가지 않겠다. 나는 당신 어머니 때문에 이 고생을 하는데 정작 당신은 성당에 나가지 않으니…” 효자인 남편 역시 어머니께서 마음 상하실까 염려되어 성당에 나가게 되었으며, 1977년 5월 25일 우리 부부는 같이 세례를 받았다. 아들까지 세례를 받게 한 나는 어머니께 일등 며느리였다.

1981년경 충청도 증평에서 아이 둘을 키우면서 주일만을 지키며 지냈는데, 어느 봄날 이웃에 살던 교우와 함께 레지오 단원들이 방문을 와서 레지오 마리애를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당연히 “저는 바빠서 못해요”라고 했다.

나는 그때 ‘레지오 마리애’라는 말을 처음 들어 보았고, 1982년 이사를 하면서 셋째 아이를 키우느라 주일을 지키는 것도 급급했다. 아이를 데리고 성당에 가면 남에게 폐가 될까봐 눈치보느라 애쓰는 나에게 레지오에 대한 두 번째 프로포즈가 시작되었다. 본당 수녀님께서 만날 때마다 어쩌면 그렇게 잊지도 않고 레지오를 하라고 권하시는지…. 그 프로포즈는 3년간 지속되었고 그분을 만날까봐 성당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울 지경이었다. 1987년 3월 막내를 유치원에 보내면서 나는 이웃에서 레지오를 한다는 곽동규(마리아) 자매를 찾아가 대체 레지오가 뭐하는 단체냐고 물었다. 그분은 나를 서운동성당 평화의 모후 Co. 직속 황금 궁전 Pr.에 입단시켰고, 성모님과의 만남도 알지 못하면서 나는 ‘숙제를 하여서 수녀님을 뵙기가 자유로워졌다’는 해방감을 갖게 되었다.

그러던 중 내게 신앙의 충격을 주는 두 사건이 일어났다. 이웃에 동갑인 개신교 친구가 있었는데 만나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도대체 이 친구는 어쩌면 이렇게 똑똑한가?’ 감탄했다. 이 친구가 하는 이야기들이 성경에 있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5년 봄날, 대문을 열어 놓은 우리 집에 ‘쉬어 가도 되느냐?’ 며 대바구니를 파는 남루한 옷차림의 일흔은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는데 대바구니는 팔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팔기 시작했다. “우리 인간이 왜 하느님을 믿어야 되는지? 예레미야서 1장 5절에 말씀하시기를… 이사야서 43장 1절에 말씀하시기를… 요한 복음 3장 16-17절에 말씀하시기를…” 끝도 없이 이어지는 말씀에 나는 젊고 세례 받은 지도 10년이 되어가는데, 너무나 부끄럽고 자존심까지 상했다. 그때까지 나는 성경이 뭔지도 몰랐다. 그 위대해 보이는 아주머니에게 충격을 받아 당장에 성경을 구입하여 읽어보니, 똑똑한 내 친구가 들려주던 이야기는 아브라함, 모세, 욥, 요나, 삼손 등의 말씀이었고, 그 위대한 아주머니의 말씀은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구원하신다는 말씀이었다.

이렇게 하느님께 무지한 나를 도구로 부르셨을 때, 두려움을 느꼈지만 “하느님은 제자를 파견하시면서 마귀를 제어하는 능력을 주시어 파견하신다”(마르 6,7)는 말씀을 믿으면서 예비신자 교리 봉사, 성경 봉사를 (1996년 10월 18일 성경 봉사자 선서식) 하면서 ‘봉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봉사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매일의 삶 안에서 말씀처럼 살지 못할 때, 나에게 영적 양식을 채워 주고, 나의 우매함과 부족함을 그분들이 채워 주었기 때문이다.

이제 내가 하느님께 받은 이 사랑을 자녀로서 전해야 하는 사도직 · 예언직 · 왕직의 의무를 새삼 느끼며 씨 뿌리는 사람으로서 유실되는 씨앗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백배의 수확을 꿈꾸는 농부처럼 일해야(복음선포) 한다(1코린 3,6). 그 씨앗에 물을 주고 가꾸고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느님이심을 기억하면서….

나는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의무와 성모님의 은총을 알지 못한 채 오직 수녀님에게서 자유로워지고자 레지오에 입단했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처럼 어느새 성모님의 사랑 안에 젖어들고 있었다. 레지오 활동이 뭔가? 굶주린 이, 나그네, 헐벗은 이, 병든 이, 감옥에 갇힌 이, 육적·영적으로 목마른 이들을 찾아 위로해 주고, 하느님의 생명수를 날라다 주는 보급 부대이다.

이 부족하고 보잘것없는 작은 몸이 무엇을 하여 하느님께 성모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성모님께서(성모님의 대행자인 단장) 시키시는(활동지시) 대로 순명하는 것이다. 선서문에서(교본 141~142쪽)처럼 부족한 나를 성령의 도우심으로 은총을 주고, 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동료 단원들의 도움과 사랑으로 우리 레지오 단원들이 순명으로 하고자 하는 모든 일에 성모님께서 함께하시고, 전구해주실 것이며, 하느님 은총으로 축복하시리라 믿는다.

오늘 이렇게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을 알도록 신앙의 성사를 가보로 내게 주신 어머니, 성모님의 사랑을 알고 실천할 수 있도록 나를 레지오로 인도해 주신 고마우신 수녀님, 입단을 도와주신 곽동규(마리아) 서기님, 철없던 나를 사랑으로 이끌어주신 변상분(아녜스) 단장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이분들이 내게 전한 사랑을 전달하고자 길을 나선다. 오직 겸손과 순명으로 하느님의 도구가 되어….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