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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007년 4월 훈화 -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살신성인(殺身成仁)
세나뚜스 조회수:638 222.114.24.13
2016-01-21 10:27:46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과 살신성인(殺身成仁)
-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 ‘형극(荊棘)의 길’을 넘어서 -

최홍길 레오 신부(대구 Se. 담당사제)

사순절 40일을 살며 주님 부활대축일을 준비하고 있는 우리들 앞에 다시 새 생명이 약동(躍動)하고 봄기운이 완연한 새로운 한 달이 펼쳐졌습니다.
4월이 열리는 첫날 주님 수난 성지주일을 시작으로 연중 52주간 가운데 가장 거룩하고 은총 충만한 한 주간 성주간(聖週間)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저희 본당에서는 - 대부분의 다른 본당에서도 마찬가지이겠지만 - 매년 성지주일(聖枝主日)이 돌아오면 향로잡이가 - 꽃으로 아름답게 장식한 - 주님의 거룩한 십자가(十字架)를 분향하는 가운데 본당기와 제단체 및 레지오 Pr.의 깃발을 세우고 본당공동체의 모든 가족들이 성당 주위 동네 한바퀴를 돌며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入城)을 성대하게 기념합니다. 새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뜻을 새기며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바라보며 묵상하게 됩니다.
지금은 30년이 다 되어가는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지만, 지난 1979년 3월 25일 경의선상(京義線上) 간이역 일산역장(一山驛長) 방사언(方士彦) 님의 순직기사는 아직도 마음 깊은 데서부터 크나 큰 감동으로 남아있습니다. 역(驛) 구내의 철길을 건너던 승객을 구하고 자신은 열차에 떠받혀 중상을 입고 국립 서울대학병원에서 55세로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방(方)씨의 순직은 바로 7개월여 전인 전해 8월 15일 똑 같은 일산역 구내에서 순직한 전임역장 최규명(崔奎明) 님의 장한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어서 더욱 애절하고 가슴 뭉클한 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또한 6.25 한국동란(韓國動亂) 당시 - 아군과 적군이 고지(高地)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하며 전운(戰雲)을 예측할 수 없는 급박한 상황에서 오로지 조국(祖國)을 위해 - 폭탄을 짊어지고 적진 속에 깊숙이 뛰어든 육탄십용사(肉彈十勇士)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월남전(越南戰)이 한창 치열할 때 훈련도중 위기일발의 부하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 산화한 육군의 강재구(姜在求) 소령, 해군의 이인호(李仁鎬) 소령을 생각하게 됩니다. 더욱이 제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신영순 교사의 이야기며 지난 2001년 1월에는 일본에서 유학하던 이수현 군이 자신을 던져 취객(醉客)을 구한 영웅적인 행동은 국가적인 장벽을 넘어 뜨거운 인류애(人類愛)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습니다. 사실 주위를 살펴보면 장하고 아름다운 미담(美談)의 주인공들을 각계각처에서 만날 수 있으며 작년 연말 보건복지부는 살신성인의 용기와 행동을 실천한 12명을 의사상사(義死傷者)로 인정(의사자 10명, 의상자 2명) 하여 포상한 바 있습니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이란 무엇입니까. 중국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노(老)나라의 공자(孔子)님이 제시하신 것인데 사람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덕목(德目)으로 인(仁)을 꼽았고 이는 다른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동정심을 가지는 따스한 마음을 가리킵니다. 공자님은 제자들에게 지혜와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옳은 일 앞에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 시대의 의사상자(義死傷者)들은 물론 평소에 그만한 인품과 덕망을 지녀가지신 분들이기는 하지만 우발적인 사고에 순간적인 판단으로 자신을 초개같이 내어던지며 살신성인의 모범을 보여준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 예수 그리스도 님은 어떠합니까. 당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영광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 죽음의 길 형극(荊棘)의 길로 스스로 찾아 나서십니다. 눈을 들어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님을 바라봅시다. 군중들은 열렬하게 빨마(Palma) 가지를 흔들며 주님을 환호하고 영접하시만 며칠 만에 표변하고 맙니다. 주님은 영광 속에 예루살렘에로 입성하시
지만 바로 그 곳에는 죄 없으신 주님을 극악무도한 대죄인 바랍바(Barabba) 보다도 더 못한 대죄인으로 십자가형에 처단하는 장로(長老)들과 대제관들, 그리고 적(敵) 그리스도 자(者)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으로서 사람이 되어 오신 것도 기각 막힌 일인데, 당신의 생애 전체를 그렇게 준비하셨고 그것도 죽기까지 십자가상에 무참하게 못박혀 죽으시기까지 철두철미 당신 자신을 온전히 다 내어놓으시고 다 부수시고 다 바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살신성인의 완전하고 탁월한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오늘의 신앙자 우리들 역시 그리스도처럼 - 그리스도 신자가 아닌 분들도 살신성인의 의로운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 적 그리스도 자들인 예루살렘 파(派)들과 더불어 이 시대를 살며 지금 여기서(Hic et Nunc) 새롭고 틀림없는 살신성인의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주어진 일상(日常) 안에서 희생하고 보속하고 속죄하며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는’ 일에 게으르고 인색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성주간을 참으로 잘 사는 의미와 정신을 깨우치며 - 살신성인을 넘어서 - 주님의 십자가상 죽음 너머에 죽음을 쳐 이긴 결정적인 부활승리가 주어져 있음을 체득하는 것은 틀림없는 은혜로움이고 크나 큰 축복이며 넘치는 기쁨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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