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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레지오 마리애 /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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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2월 향기로운 사람 - 효목본당 이영출 베드로 형제
세나뚜스 조회수:564 222.114.24.13
2016-01-21 10:53:52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바칩니다
- 대구대교구 효목본당 이영출 베드로 형제 -

2007년 6월 6일 하양 대구가톨릭대학교 대운동장에는 2만 명이 넘는 레지오 단원들이 모여 대구대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 기념 신앙대회에 함께했다. 참가한 모든 단원들이 모두 뜻 깊은 행사로 느꼈겠지만 교구장 표창장을 받은 12분의 단원들에게는 특별히 남다른 감회를 안겨준 대회였을 것이다. 이영출(베드로) 형제는 이날 그간의 노고와 헌신의 보답으로 교구장 표창 공로상을 수상한 3분의 선배 단원 중 한 분이시다. 이영출 형제의 이야기를 통해 레지오 마리애의 아름다운 향기를 맡아보기로 하자.

이영출 형제는 1957년 7월에 형수(자매)님의 권유로 신암성당에 입교하여 교리를 받게 되었다. 그 당시 교리는 320문답지를 가지고 배웠는데, 6개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게 되었다. 그는 신자가 된 후 본당 성가대 및 레지오 쁘레시디움에 입단하여 최선을 다하여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마음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면서 보람된 신앙생활의 기쁨을 느끼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레지오의 첫 활동은 아무것도 모르는 가운데 신암성당 청년 혼성팀 평화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설립되면서 부단장을 맡음으로써 시작되었다. 하느님 뜻에 순명하면서 열심히 배우고 활동하며 신앙생활이 성숙되어 가고 있던 어느 날, 갑자기 군에 입대하게 되어 사랑과 정열을 쏟았던 레지오 활동을 그만두게 되었다. 너무나 아쉽고 섭섭하여 며칠이나 성모님 앞에서 기도하며 울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는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군종사목을 약간 도왔을 뿐 변변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생활도 안정되고, 1985년 9월에 효목성당으로 전입하게 되었는데 모든 것이 낯설고 서먹서먹한 기분이 들어,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마음을 다잡아먹고 스스로 레지오에 다시 입단할 것을 결심하고 찾아간 곳이 바로 효목성당 증거자들의 모후 쁘레시디움이었다. 이 쁘레시디움에 입단하여 예비단원 수련에 임하였는데 수련기간 중 선서도 아직 하지 않은 상태에서 본당신부님께서 형제를 쁘레시디움 부단장에 임명하셨다. 그때 그는 너무 당황하여 신부님께 신부님, 저는 아직 초년병입니다. 좀 더 배워서 맡으면 안 되겠습니까? 하고 건의했지만 신부님은 순명이요라고 단 한마디만 하셨으며 그 말씀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순명했다고 한다. 이때부터 그는 더욱더 열심히 활동을 하고 레지오 주회합에 빠지지 않고 출석하였으며, 레지오 간부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솔선하여 모범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최선을 다했다.
형제는 쁘레시디움 부단장 및 단장직을 9년간, 나아가서 꾸리아 부단장 및 단장직을 6년 역임했으며, 1991년 8월 효목 사랑하올 어머니 꼬미씨움이 삼덕 꼬미씨움에서 분단 설립될 당시 초대 단장으로 부름을 받아 6년간 역임하였다. 또 4년 뒤 2000년에 다시 꼬미씨움 단장이 되어 2년간 봉사하는 등 효목본당 레지오 발전을 위해 헌신을 했다. 현재도 증거자들의 모후 쁘레시디움 단장을 맡아 일흔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젊은 단원 못지않은 열정으로 활동을 계속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열심히 레지오 활동을 하던 중, 주님께서는 형제에게 영광스러운 은총을 주셔서 1989년 10월에 대구대교구장 선교상을 수상하였으며, 그 후 본당 설정 25주년을 맞으면서 2002년 7월에 또 한 차례 교구장 선교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그는 선교대상자를 발견하면 꾸준한 지향을 두고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했으며, 가가호호 방문선교, 가두선교에도 열성을 기울여 레지오 활동 22년간 매년 5~6명씩 세례받게 하는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오로지 성모님께 의탁하여 활동하기 전에 기도하고, 한두 번의 실패에 실망하지 않고 꾸준히 활동하는 것이 레지오 선교에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요점이라고 선교 비결을 설명했다.
형제는 레지오 확장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증거자들의 모후 쁘레시디움은 금년에 한 팀을 분단시킴으로써 모두 네 팀의 쁘레시디움을 분단시켰는데, 단원이 20명이 넘어야 분단시켜 모팀과 자팀이 모두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모했다고 한다. 그는 현재 쁘레시디움이 7명으로 구성되어 있어 좀 어려운 상황이지만 노력하여 다섯 번째 분단을 꼭 이루어낼 것이라고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레지오 단원의 가장 으뜸 의무는 출석의 의무라고 강조하는 형제는 레지오를 처음 시작한 1985년부터 지금까지 22년간 주회합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하고 있다고 한다. 이 기간 동안 때때로 서울, 부산 등 타지에 출장을 갔을 경우에도 레지오 회합날이 되면 그 지방 성당에 가서 본당신부님의 재가를 얻은 후 신부님의 안내에 따라 그 본당에서 레지오 회합에 참석하기도 했으며, 한 번은 병원에 입원했을 때인데 링거 주사를 꽂은 채 주회에 참석했더니 단원들이 그의 정성에 감동하여 그 다음 주 주회합을 병원까지 찾아와서 원목실에서 병원방문 주회로 하기도 하였단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결석을 하지 않고 출석만은 꼭 하는 이유는 레지오 간부로서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단원들에게 모범이 되고 표양이 되어야 하겠다는 마음에서이다. 그리고 평의회든 쁘레시디움이든 회합을 할 때마다 레지오 단원의 으뜸가는 의무는 출석이다라는 것을 항상 강조하고 지시하고 있는데 내가 결석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레지오 출석만은 꼭 지켜야지, 지켜서 모범이 되어야지라는 생각을 항상 마음속에 깊이 새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효목본당 30주년 기념 레지오 야외행사에서 레지오 20년 개근상을 수상했을 때, 어떤 사람은 20년 개근상을 받는 사람은 바보 야냐?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이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 개근한 것이 아니라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하고 레지오의 발전을 위해서 개근하였기에 어떤 비난이나 유혹에도 굴하지 않고 출석의 의무만은 계속 최선을 다해서 지켜나갈 것이라 다짐했다.
효목 꼬미씨움 장세만(리노) 단장은 요즘에도 가끔씩 꼬미씨움 간부들에게 레지오 잘하고 간부 의무 다하라고 호통 치시곤 해요. 그런데 모범적으로 활동하시고 계신 선배 단원의 충고라서 거부감이 들기보다는 오히려 간부의 자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곤 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레지오 마리애 정신이 투철한 성모님의 전사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분이시지요라고 선배 단원을 칭찬했다.
최영수 요한 대구대교구장은 이러한 그의 레지오에 대한 열정과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올해 6월 6일 대구대교구 레지오 마리애 50주년 기념 신앙대회에서 공로상을 수여하며 이를 치하한 것이다. 그는 교본을 많이 알아야 해요. 완전히 읽고 터득해야 올바른 레지오 전사로서의 자질이 함양됩니다. 이러한 공부를 통해 모든 단원들이 간부가 될 수 있는 소양도 길러지게 됩니다. 또한 양적인 레지오 확장에 치중하지 말고 실질적으로 활동하는 레지오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절대적으로 우리 단원의 의무 중 으뜸 의무인 출석의무를 다 하도록 노력하십시오라고 후배 단원들에게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_김의도 헤르메네질드(대구 Se.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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