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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우리 쁘레시디움에서는 - 대구대교구 계산 주교좌본당 ‘자애로우신 어머니’ 쁘레시디움
세나뚜스 조회수:277 112.166.26.76
2016-01-21 12:49:36
 항상 기쁜 마음으로 봉사하라

                                대구대교구 계산 주교좌본당 ‘자애로우신 어머니’ 쁘레시디움

  

찌는 듯한 불볕더위가 연일 기승을 부리는 7월의 어느 금요일, 아스팔트 위로 마치 아지랑이처럼 뿜어지는 열기를 확인하며 계산 주교좌성당을 향해 터벅터벅 걸음을 옮겼다. 오늘 방문하는 쁘레시디움은 계산 ‘천주의 성모’ 꼬미씨움(단장:장병철 요한, 담당사제:이재수 시몬) 직속 ‘자애로우신 어머니’ 쁘레시디움이다.

  오전 10시 주회시간이 가까워지자 단원들이 속속 모여든다. 14명의 단원 중 이날 2명의 결석자를 제외하고 12명의 단원, 그리고 순방 차 온 꼬미씨움 부단장(한옥화 콘솔시아)과 본 기자까지 모두 14명이서 햇볕이 정면에서 내려쬐는 매우 협소한 회합실에 모여 묵주기도를 드렸다. 벽에 걸린 작은 선풍기 한 대가 털털거리며 돌아가는 것이 고작인 이 작은 회합실은 사람들의 열기까지 더해져서 마치 한증막을 연상할 정도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전혀 흔들림 없이 묵주기도에 열중하고 있는 단원들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지탱하고 발전을 견인해 온 할머니들의 저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자애로우신 어머니 쁘레시디움(단장:이금연 아녜스)은 1987년 9월 1일 상아탑 쁘레시디움에서 분단하여 설립하였으니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다. 60대 후반의 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7, 80대의 노령단원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어르신 쁘레시디움’이다. “한창일 때인 90년대에는 매년 수십 명의 입교자와 영세자를 배출하는 등 매우 활발한 활동을 하였으나 현재는 단원들이 연로하여 근래의 활동은 저조합니다”라고 이금연 단장은 겸손하게 이야기한다. 실상은 아직도 웬만한 젊은이 쁘레시디움 이상의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었는데, 지난 1월에 발표한 사업보고에 의하면 1년 간 교리반 인도가 20명, 영세자가 11명, 회두 5명으로 나타나 있다. 계산 꼬미씨움의 한옥화 부단장에 의하면 이 쁘레시디움은 2000년에 들어와서도 매년 교리반 인도와 영세자 입교가 10명 아래로 떨어진 적이 없이 계속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혹시 꾸준한 선교활동 성과에 어떤 숨겨진 비결이라도 있는 건 아닌가 하여 질문하니 “비결같은 것이 있을 리가 있나요. 다만 저희 단원들은 언제 어디서든 ‘천주교를 알려 드립니다’라는 선교용 소책자를 휴대하고 다녀요. 그래서 연도를 간다거나, 버스나 택시로 이동할 때에도 이 책자를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선교를 한답니다. 이 활동이 상당히 효과적인 것 같습니다”라고 단장은 답변한다. 또한 이제 나이가 들어 적극적으로 가두선교나 방문선교를 벌이지는 못하지만, 그 대신 집안에 많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집안의 친척이나 친지들 중 비신자들에게 가톨릭을 알리는 활동과 냉담자 회두 활동에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현재 병환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 박남식 논나 부단장의 감동적인 활동사례 한 편을 살펴보자. 박 논나 부단장은 지난 해 대구대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 신앙대회에서 평생 300명이 넘는 사람을 입교시켜 선교상을 받은 분으로 이 쁘레시디움 창단 멤버이기도 하다. 논나 자매는 시립병원에 입원한 환자 중에 위독한 부인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병원으로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라는 이름으로 대세를 주고 급한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런데 다음 날 임종직전이라는 연락을 받고 다른 자매 한 명과 함께 급히 달려가서 임종을 지키면서 기도를 드렸는데 두 끼를 굶으면서도 계속 기도를 드리니 병원에서 밥 한 그릇씩을 줘서 먹었는데 그 밥맛이 꿀맛이었단다. 그 배고픔으로 마리아 자매의 임종을 지켜볼 수 있었는데 장례식을 치를 일이 걱정이 되어 성당에 갔더니 마침 신부님이 계셨다. 늦은 시간에 웬일이냐며 놀라시는 신부님께 사정을 얘기했더니 장례미사도 집전해주시겠다고 하면서 주머니를 털어 장례비용에 보태라고 돈까지 주셨다. 이때 논나 자매는 신부님의 배려에 매우 감격하였다고 한다. 이튿날 아침까지 몇몇 교우들의 도움을 더 받아 장례비용을 마련하고 영안실에 가 보았더니 찾아오는 손님도 없이 오직 자녀들과 나이 많은 남편이 망연자실하여 울기만 하고 있었다. 병원 측에서는 그날 안으로 장례를 치르라고 했으므로 밤이 늦어서야 수의를 만들고 관을 맞추어 겨우 병원차를 준비했다. 눈 내리는 겨울 밤 차가운 바람 속에 모닥불을 피우고 땅을 녹이며 택지를 겨우 마련해 놓고 보니 청석이 나오는 땅이었다. 겨우 시신이 들어갈 만큼 파서 시신을 모시고 마리아 가족과 다음 주일에 성당에서 만나자 하고는 헤어졌다.

집에 와서 보니 발이 얼어 동상에 걸려 있었다. 다음 주일 그 가족들과 만나 예비자 교리반에 안내하여 다 세례를 받게 하였다. 이것이 인연이 되고 장례 때 성당에서 보여 준 친절에 호감을 가지게 된 그 동네 40호가 넘는 세대가 모두 영세를 받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고 한다. 참으로 본받을 만한 투철한 사명감과 선교 열정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우리 교회를 지탱한 원동력인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정신이라고 생각하며 지금 서울에서 입원 중인 논나 자매가 하루 빨리 쾌차하기를 기원하였다.

이 쁘레시디움은 이 외에도 다양한 활동으로 봉사의 직분을 다하고 있었다. 우선 단원 전원이 군종후원회에 가입하여 주회 때마다 사랑의 동전모으기(하루 100원) 운동을 전개, 그 자금으로 가톨릭신문을 구입하여 매월 10부씩을 군부대와 교도소로 보내고 있었다. 또한 교도사목후원회에도 가입하여 시간이 날 때마다 교도소를 방문하여 재소자들을 위문하고 가톨릭을 알리고 있다고 한다. 이 외 매년 군위 양로원, 산청 인혜병원, 사랑의 집 등 사회복지시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소외받고 있는 이웃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쁘레시디움의 가장 큰 자랑거리가 무엇인지 질문하자, 이금연 단장은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라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5장 16절 이하를 인용하며 “항상 기쁘게 활동하고 다른 쁘레시디움에 비해 많은 기도를 드리고 단원들 간의 우애가 돈독한 점이지요”라고 답변한다. 이 쁘레시디움은 매달 첫 금요일에 모든 단원들이 함께 성체조배를 할 정도로 영성과 기도생활에도 모범적인 쁘레시디움이었다. 이쯤이면 나이가 들어서 활동할 수 없다는 말은 변명거리라는 것이 입증되지 않을까? 자신에 알맞은 활동을 찾아서 열심히 활동하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현재 레지오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단원들의 노령화에 대한 한 가지 대안을 찾은 듯 홀가분한 마음으로 취재를 마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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