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운영관리 월간 레지오 마리애 / 빛

월간 레지오 마리애 / 빛

게시글 검색
[2009년] 죽의 장막에 뿌리 내린 레지오 - 중국 칭다오 평화의 모후 꾸리아
세나뚜스 조회수:322 112.166.26.76
2016-01-21 12:50:23
      죽의 장막에 뿌리 내린 레지오 

  
                                                                      중국 칭다오 평화의 모후 꾸리아

                                                                                       단장 장현영 바오로

  중국 산동성(山東省) 칭다오(青島)시는 중국과의 수교 이후 중국에 대한 한국인의 투자가 가장 활발했던 도시입니다. 그러나 투자 초기의 칭다오 시에는 사업상 단기 거주하는 한국인이 대부분이었고, 당시 이곳에 거주하고 있던 몇 안 되는 교우들은 중국인 성당이지만 미사참례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였습니다.

  그 후 8명의 교우들을 중심으로 1992년 처음으로 한인천주교 교우회가 결성됩니다. 한인교우회가 활성화되면서 1995년 교우회에서 초청하여 포항성당의 김두신 요한 신부님의 집전으로 첫 공소미사를 하였고 이후 공소예절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995년 12월 20일부터 중국 대련에 유학중이던 수원교구 소속 홍창진 요한보스코 신부님의 집전으로 월 1회의 공소미사가 교우의 사업장 한 곳에서 정기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중국에서의 종교행위, 특히 외국인의 종교행위는 중국정부의 허가를 받아 정해진 시간과 장소에서만 할 수 없기에 월 1회의 공소미사마저도 중국정부에 매번 보고하고 허가를 얻어 꾸준히 미사를 봉헌하고 있었습니다. 1997년 10월 당시 티앤진(天津)에서 한인천주교회 공동체사목을 하시던 김철재 바오로 신부님이 대구대교구의 승인으로 초대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칭다오공동체의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교우의 수가 늘어나면서 상당기간 동안은 호텔에서 미사를 드릴 수밖에 없었으나(일반 외국인의 집회가 허용되는 곳은 호텔), 신자들이 늘어나자 1998년 중국정부 종교국의 허가를 받아 한국교민만을 위한 주일 미사를 칭다오주교좌성당인 성미카엘 성당에서 봉헌하게 되었습니다.

  초대 주임신부님이 부임한 후, 1997년 12월 4일 처음으로 칭다오본당 내에 자매들로 구성된 인자하신 어머니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습니다. 그리고 2년 뒤인 1999년 11월 24일, 형제들로 구성된 첫 남성쁘레시디움인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이 창단되었고, 이후 2007년까지 21개 쁘레시디움으로 늘어납니다.

  쁘레시디움 설립 초기에는 성모님을 위한 군대의 필요성이 절실하여 일단 레지오를 시작해야겠다는 일념이었고, 칭다오 평화의 모후 꾸리아가 설립되는 2004년 3월 2일까지 신부님의 지도하에 레지오 활동에 열심할 뿐이었습니다. 저희 평화의 모후 꾸리아는 대구 세나뚜스의 정식 승인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 세나뚜스의 부분적인 지원을 받으며 저희들만의 레지오 활동을 계속하였습니다. 꾸리아 창단을 계기로 12개 쁘레시디움(여성:9, 남성:3)에서 2007년까지 21개 쁘레시디움(칭다오본당-여성:10, 남성:5, 청양(城陽)본당-여성:4,남성:2)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그 후 2006년 5월 14일 대구대교구 의덕의 거울 세나뚜스의 승인을 받아 세나뚜스 직속 꾸리아로 정식등록되었습니다. 이후 청양본당 소속 6개 쁘레시디움은 청양 하늘의 문 꾸리아가 창단되면서 전출되고, 칭다오본당 평화의 모후 꾸리아 소속의 쁘레시디움은 13개로 조정되어(여성:10, 남성:3) 2008년 12월 현재 128명의 행동단원과 96명의 협조단원으로 구성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꾸리아 정식승인과 함께 의덕의 거울 세나뚜스의 간부들이 칭다오를 방문하여 처음으로 레지오에 대한 전반적인 교육을 하였습니다. 이 교육은 첫 상급평의회에 의한 교육이었으며, 레지오 활동에 많은 도움이 되었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전까지는 본당신부님이 여러 가지 주제로 강의와 교육을 담당하였고, 아주 가끔 어렵사리 마련된 특강에 저희 단원들이 모두 참석하여 레지오 활동을 위한 밑거름으로 삼아 왔습니다. 외국에 소재하는 레지오는 지원을 받기에도 애로점이 많아 교육과 피정의 기회가 적고, 정보 교환 등이 미비합니다. 따라서 여러 이유들로 정기적인 단원교육이나 간부교육 등 지금까지 하지 못하고 있는 교육과 피정 등을 준비하고자 합니다. 2009년부터는 대구 세나뚜스에서도 많은 지원을 약속해 주어 감사드립니다.

  초기 레지오 주회는 교육관을 마련할 수 없어서 각 단원의 집을 순방하면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의 단원들은 조선 초기교회의 상황을 어렴풋이나마 체험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후 아파트를 교육관 용도로 임대하게 되면서 주회는 이 교육관과 수녀님들의 아파트 숙소(수녀관)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드디어 2007년 교우들의 숙원이었던 교육관, 친교의 집이 봉헌되면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꾸리아 월례회, 아치에스 행사, 단원교육, 연차 총친목회 등 여러 행사에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면서, 그동안 호텔, 교우들의 집, 협소한 교육관, 그리고 수녀님께 폐 끼치면서 사용하던 수녀관 등으로의 여행을 끝내게 되었음을 전단원은 주님과 성모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4년여 간, 칭다오시 외곽 핑두(平渡) 시에 거주하는 중국인 나환우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저희 단원들의 참여가 두드러집니다. 이미 완치되었으나 환부의 기형과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분들을 위해 약품, 식품지원, 환경개선(빨래, 청소, 소독 등)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가족도 없고 연로한 환우의 경우, 단원들의 봉사가 그들의 삶에 많은 변화를 주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중국에서의 레지오 활동은 한국의 레지오와 비교하여 많은 점에서 미흡합니다. 많은 종교 활동의 제약이 있고, 봉사활동의 범위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곧 내국인을 대상으로 한 선교활동이 금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고아원, 양로원, 요양원 등의 방문 봉사도 현지 중국인을 상대할 때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어 상당히 위축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봉사와 활동으로 제한되어 있어 많은 부족함을 느낍니다.

  외국에 있는 교회, 특히 중국내의 교회는 항상 교우들의 이동이 심하여 레지오 단원들의 이동도 잦은 편입니다. 짧게는 1년-3년 정도 상사주재원으로 근무 후 귀국하는 등 이동이 심하여 결속력이 자칫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외국생활이라는 특수한 여건이 오히려 단원들 간의 친교와 결속력을 더욱 강하게 하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본당행사는 항상 레지오 단원들의 적극적인 참여하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첫 쁘레시디움인 인자하신 어머니 쁘레시디움은 2007년, 처음으로 500차 주회를 마치고 많은 축하를 받았습니다. 주님의 은총과 성모님의 보살핌이 이 척박한 땅에도 있음을 느낍니다. 2007년 12월 9일에는 칭다오에 레지오가 뿌리내린 후 처음으로 연차 총친목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그동안 각 쁘레시디움별 야유회 또는 친목회는 매년 빠짐없이 하고 있었지만, 칭다오공동체에서 레지오가 시작되고 처음 하는 이날의 행사는 단원들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올해도 12월 6일 연차 총친목회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군대로서 봉사하며 단원간의 결속을 다지는 또 하나의 행사가 될 것입니다.

  칭다오본당 레지오의 기초를 잡아주신 1대 단장 김석환 베드로 형제님과 어려운 가운데에도 레지오의 확장과 내실을 위해 오랫동안 힘써주신 2대 단장 이혜훈 도미니카 자매님과 그동안 레지오의 발전을 위해 힘써 주신 전임 신부님과 매주 훈화해 주시고 영성적으로 도움 주시는 이기수 비오 신부님, 전 세바스티아나, 이 에드몬드 수녀님 그리고 항상 열심이신 모든 레지오 단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댓글[0]

열기 닫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