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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성모발현과 메시지 - 전광진 엘마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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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1 12:54:19
성모발현과 메시지

                                                                                              전광진 엘마노

지금까지 성모발현에 대한 수많은 보고가 있었지만, 교회 교도권이 인정한 발현은 다음과 같은 9번이다. 멕시코의 과달루페Guadalupe(1531년), 프랑스 파리의 뤼 뒤 박Lu de BAC (1830년), 프랑스의 라 살레트La Sallette(1846년), 프랑스의 루르드Lourdes(1858년), 프랑스의 퐁맹Ponmain(1871년), 아일랜드의 노크Knock(1879년), 포르투갈의 파티마Fatima(1917년), 벨기에의 보랭Beauraing(1932년), 벨기에의 바뇌Banneux(1933년).


1. 과달루페(GUADALUPE, 멕시코)의 성모마리아

1531년 12월 9일부터 성모님은 멕시코의 테페약 언덕에서 55세의 원주민 후앙 디에고에게 5번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스스로 평생 동정이며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밝히셨고, 그 자리에 성당을 짓기를 원하셨다. ‘뱀의 머리를 짓밟는 분’이라는 뜻의 과달루페 성모발현 이후 7년 만에 당시 인구의 거의 전부였던 800만 명 이상의 원주민들이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오늘날에도 멕시코는 가톨릭 국가로서 전체 인구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이다.

2. 뤼 뒤 박(LU DE BAC, 프랑스)의 성모마리아

1830년 7월 18일부터 성모님은 프랑스 파리의 뤼 뒤 박에서 수도회 지원자였던 카타리나 라브레에게 3번 발현하셨다. 프랑스와 전 세계에 큰 재난이 닥칠 것이니 열심히 기도하라는 것과 메달을 만들 것을 원하셨다. 그 후 발현 모습을 본떠서 지구 위에 계시는 성모상이 제작되었고, 또 메달로도 제작되었다. ‘기적의 메달’로 명명된 메달은 목걸이로, 또 묵주에 붙여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3. 라 살레뜨(LA SALETTE, 프랑스)의 성모마리아

1846년 9월 19일, 성모님은 프랑스의 라 살레뜨에서 양을 치던 11세 막시민 지로와 15세의 멜라니 마티외에게 한 번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눈물을 흘리시면서 회개하고 하느님과 화해할 것을 당부하셨다. 발현이후 회개 운동이 프랑스 전역으로 퍼져 나갔으며, 1872년경부터 라 살레뜨는 세계적인 순례지가 되었다.

4. 루르드(LOURDES, 프랑스)의 성모마리아

1858년 2월 11일부터 성모님은 프랑스 루르드의 한 동굴 앞에서 양을 치던 14세의 벨라뎃다에게 18번 발현하셨다. 죄인들을 위해 기도할 것, 회개할 것, 이곳에 성당을 짓고 참배할 것을 말씀하시고, 스스로를 ‘원죄 없이 잉태된 여인Conceptioni Immaculata’이라고 밝히셨다. 기도와 보속행위, 묵주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다. 지금도 매년 400만 명이 루르드를 순례하고 있다. 1858년 이후 약 6000건 이상의 기적이 일어났고, 현재도 해마다 평균 15건의 기적보고가 접수되고 있다.

5. 퐁맹(PONTMAIN, 프랑스)의 성모마리아

1871년 1월 17일, 성모님은 프랑스의 퐁맹에서 기도하던 12세의 외젠느와 11세의 요셉에게 한 번 발현하셨고, 그 후 마을사람 80여명 앞에서 한 번 발현하셨다. 언제나 기도할 것, 자기의 십자가를 남에게 지우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기쁜 마음으로 항상 기도하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당시 프랑스는 프러시아와 전쟁 중이었으나 1월 28일 전쟁이 끝났고, 징집되었던 마을 청년들도 무사히 돌아왔다. 많은 순례자와 함께 치유가 보고되고 있다.

6. 노크(KNOCK, 아일랜드)의 성모마리아

1879년 8월 21일, 성모님은 아일랜드의 노크에서 마을 주민 15명에게 한 번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흰옷을 입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셨는데, 오른편에는 성 요셉이 기도하는 모습, 왼편에는 주교복을 입은 사도 요한이 설교하는 모습으로 서 있었고, 그 뒤의 제대 위에는 어린양이, 어린양 주위로는 천사들이 돌고 있었다. 노크의 성모님은 아무런 메시지를 전해주시지 않았다. 침묵 중에 교회와 미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신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 수천 건의 치유가 보고되었다.

7. 파티마(FATIMA, 포르투갈)의 성모마리아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성모님은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목동인 10세의 루치아와 사촌 동생들인 7세의 히야친타와 9세의 프란치스코에게 6번 발현하셨다. 스스로를 ‘로사리오의 여왕’이라고 밝히고 세계 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 기도를 바칠 것과 죄인을 위해 희생할 것, 그리고 성모 성심을 공경할 것을 요청하셨다. 특히 러시아를 성모성심께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영성체할 것을 원하시며,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 평화와 러시아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이 이루어지리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성모님은 공산주의의 등장으로 세계가 당면한 어려움 앞에 신앙인들의 사명을 밝혀주셨고, 마침내 소련은 1990년대에 공산주의를 포기하게 된다.

8. 보랭(BEAURAING, 벨기에)의 성모마리아

1932년 11월 29일부터 이듬해 1월 3일 사이에 성모님은 벨기에의 보랭에서 9-15세의 다섯 아이들에게 33번 발현하셨다. 자신을 ‘원죄 없이 잉태된 티 없는 동정녀’, ‘하느님의 어머니’, ‘천상 여왕’이라고 밝히면서 끊임없는 희생과 기도 및 죄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주셨다. 그 후 많은 죄인들이 회개하였고, 병자들이 치유되었으며, 주민들은 냉담을 풀게 되었다. 발현 첫 해만 순례자가 2백만 명이 넘었고, 병의 치유가 계속 보고되었다.

9. 바뇌(BANNEUX, 벨기에)의 성모마리아

1933년 1월 15일부터 3월 2일까지 성모님은 벨기에의 바뇌에서 비신자인 12세의 마리에뜨에게 8번 발현하셨다. 스스로 ‘가난한 이의 동정녀’라고 밝히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를 많이 하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성모님은 비천하고 가난한 서민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많은 이들이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세계적으로 1천개 이상의 성당이 ‘병자의 성모’ 등의 호칭으로 봉헌되었고, 바뇌성모국제기도회원도 2백만 명이 넘었다.

10. 참고: 메주고리(Medjugorje) 성모발현

메주고리 성모님은 교도권이 아직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최종판단이 유보된 상태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작은 산골마을 메주고리에서 1981년 6월 24일부터 1985년 5월 7일까지 6명의 아이들에게 정기적으로 성모님께서 발현하셨다고 보고되었다.

1991년에 유고슬라비아 주교회의는 다음과 같이 결정하였다. “지금까지 메주고리에서 일어난 일들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아직은 발현이나 사적계시로 확신할 수 없다. 앞으로 주교회의는 이 일을 계속 관찰해나갈 것이다... 그곳을 순례하는 것은 허락된다.”

메주고리는 최근에도 매년 100만 명 이상의 순례객들이 다녀가고 있다. 하지만 여행사들이 다투어 마치 교도권이 인준한 발현지인 것처럼 과대광고를 하는 것은 바로 잡아야할 것이다.

가톨릭 신앙은 기적 현상에 연연해하는 신앙이 아니다. 기적에 연연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일 뿐 아니라, 동시에 성모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참된 신심은 일시적 감정이나 허황된 믿음에 있지 않고, 특별한 은사를 쉽게 청하여 거기에 매료될 것도 아니다. 교도권의 정당한 결정을 거부하는 것 또한 교회전체의 선익을 거스르는 것이기에 합당한 순명정신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1998년 5월 15일자 평화신문은 창간 10돌을 기념하여 ‘종교에 대한 사회일반인식’ 설문조사를 하였는데,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천주교’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문항이 있었다. 1등이 성모마리아(15%), 2등이 미사(14%), 공동 3등이 성당(9%)과 교황(9%), 5등이 수녀(8%), 6등이 김수환추기경(7%)의 순이었다. 여전히 천주교하면 일반인들에게는 성모마리아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현실이다. 또 신부들은 등수에도 없는 것을 보니 수녀들보다도 못한 것 같아서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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