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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한국의 성모신심운동 - 전광진 엘마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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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21 12:54:48
    한국의 성모신심운동

                                                                                         전광진 엘마노

가톨릭 신앙은 하느님을 천지의 창조주로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으며, 성령을 같은 하느님으로 믿는 것이다. 그 신앙을 실현하는 것은 말씀과 성찬을 통해 하느님과 하나 되어 사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주일미사에 참례하여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시는 것,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다.

세계 제1차 대전(1914-1918)이 끝난 직후 비참한 파멸을 겪은 유럽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깊이 반성하면서 하느님을 다시 찾기 시작하였다. 신앙심이 강했던 사람들은 보다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신앙을 실현하는 방식을 찾게 되었는데,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다양한 신심운동이었다. 성모님을 삶의 모범으로 삼는 성모신심운동, 성서를 삶의 중심으로 삼는 성서모임, 평신도사도직을 살려는 꾸르실료, 성령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려는 성령운동 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성모님을 삶의 모범으로 삼는 성모신심운동은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레지오마리애Legio Mariae

1921년, 아일랜드의 수도 더블린에서 경건한 평신도 신앙인이었던 프랭크 더프(1889-1980)와 15명의 여성신자들은 ‘자비의 모후회’라는 모임을 결성해서 매주 병원을 방문하고 말기암환자들을 위해 봉사활동을 했는데, 이 모임이 레지오마리애의 모체가 되었다.

가난한 암환자들을 방문하기 위해 모인 이 모임은 군인과 같은 굳건함과 용맹성을 가지기 위해 옛 로마군대를 본떠서 마리아의 군대Legio Mariae라는 이름을 택하였고 세계로 전파되었는데, 전 세계 평신도사도직단체 가운데 가장 큰 단체로 발전하였다.



한국의 레지오마리애는 1953년 당시 광주대교구장 현 하롤드 대주교의 지도로 전남 목포의 산정동본당과 경동본당에서 시작해서 착실한 성장을 거듭하여 한국의 평신도사도직 단체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성장하였다. 그 뒤로 우리나라에 성서모임, 꾸르실료, 포콜라레, 성모의 기사회, 성령운동과 같은 신심운동들이 속속 유입되어 신자들의 적성과 취향에 따라 자리 잡게 되었다. 한국의 레지오마리애가 잡음 없이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변칙을 철저히 배격하고 교본중심의 원칙적 운영으로 혼선을 미연에 막고,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실천을 강조해 신앙과 실천을 함께 하고자하는 신자들의 요구에 잘 부응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금전적 봉사를 철저히 금지시키고 기도와 노력봉사만을 허용한 점도 금전관계로 인한 잡음과 대립을 미연에 방지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언제나 주교와 본당신부의 지시를 받아 운영함으로써 본당의 일치와 화합을 저해하지 않고 선교와 사목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다. 특히 입교권유와 냉담자 회두, 각종 봉사활동 등에 큰 성과를 거둠으로써 한국교회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신앙은 믿는 것만도 아니고 아는 것만도 아니라 생활에서 실천되고 증거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다. 신앙을 어떻게 우리생활에 실천할 것인가? 여기에 기도하고, 봉사하고, 선교하는 레지오마리애는 해답을 주었다. 하지만 최근 세상변화에 따른 적응문제, 소공동체 운동과의 관계설정 문제, 젊은 단원 확보문제, 재교육문제 등으로 레지오마리애가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레지오마리애가 성모님의 인내와 끈기를 본받아 어려움을 잘 극복하고 교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계속 해나가야 하겠다.

푸른군대

푸른군대는 1947년 미국의 헤롤드 콜갠 신부에 의해 창설됐다. 콜갠 신부는 구 소련의 회개를 소망하며 붉은군대 소련에 대항해 성모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푸른군대 대원을 조직하려는 목적으로 이 단체를 창설하였다. 푸른군대의 본부는 파티마에, 국제사무국은 스위스에 있고, 현재 세계 60여 개국에 전국평의회가 조직되어 있다. 각 교구마다 지부가 결성되어 있고 전국 평의회의 지지를 따른다.

단원들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고 묵주기도를 바치며, 일상생활의 고통을 참아내고 마리아의 티 없는 성심께 대한 신심을 일으켜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는 생활을 한다. 한국에는 1964년 부산의 동항본당 하 안토니오 신부에 의해 도입되었다. 각 교구장의 인준을 받고 교구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본부는 부산에 있다. 1981년부터 「마리아」라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성모의 기사회

성모의 기사회는 성모님의 충실한 기사로 열심히 사도직을 수행하고 특히 죄인들의 회개와 이교인, 갈라진 형제들과의 일치를 위해서 기도하며 성화를 이룩하려는 신심단체로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신부와 동료수사 6명에 의해 1917년 10월16일 로마의 꼰벤뚜알 프란치스꼬 수도원의 성 테오도로 국제 대신학교에서 창설되었다. 한국에는 1976년 대구대교구장 서정길 대주교의 승인으로 설립되었고 이어서 전국 대부분의 교구에서 활동 중이다.



마리아의 사제운동

1972년에 파티마를 순례하던 이탈리아의 스테파노 곱비 신부는 성모성심께 스스로를 봉헌하는 결심을 하면서 이에 동참하는 사람들로 ‘다락방 모임’을 결성하였다. 이 모임은 점차 세계전역으로 확대되었다.

한국에는 1976년 부산교구 하 안토니오 신부에 의해 도입되어 사제다락방모임뿐 아니라 수도자, 평신도 다락방모임이 활동하고 있다. 마리아사제운동은 사제, 수도자, 평신도 모두 스스로를 ‘티 없으신 성모성심’께 봉헌하고 생활로써 실천하고자하는 것이다.



평가

신심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교구장의 가르침에 따라야하고 교구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야한다. 사목자들은 다양한 신심운동들이 교회 내에서 활성화되고 공동체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할 것이며, 서로서로 배타적이 되지 않도록 잘 지도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신심운동의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2천 년 전, 초대교회시기에 벌써 성령운동이 일어나서 얼마동안 교회에 큰 공헌을 하였지만, 결국에는 교회에 폐해를 끼치고 소멸되었던 일이 있었다. 초대교회 성령운동 실패의 원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 성령은사를 체험한 사람들이 우월의식과 영적인 자만심을 갖게 되어 엘리트신앙인이라는 의식을 가졌고, 둘째, 성경을 자기 식으로 해석함으로써 주관적인 신앙을 가지고 본당공동체 안에서 서로 화합하지 못하고 자신들끼리만 똘똘 뭉쳐서 본당의 일치를 저해하였고, 셋째, 감정에 대한 과도한 치중으로 신앙의 혼란을 초래하였고, 넷째, 치유와 방언과 같은 성령체험에 지나치게 집착하여 건전한 신앙을 저해하였던 것이다. 무엇보다도 주교와 본당신부까지 거역하고 독자적인 길을 가게 됨으로써 결국은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하고 이단으로 빠지거나 소멸되었던 것이다.



십여 년 전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수백 명이 집단자살을 했던 신흥공동체는, 교구에서 이탈해나간 가톨릭 성령운동 단체였다. 개신교에서는 특히 성령운동이 활발하게 발전되었는데 우리나라 개신교 성령운동의 부작용은 훨씬 더 심각한 편이다. 많은 개신교계 신흥종파가 성령운동을 통해 새로 생겨난 것이다. 가톨릭에서도 최근 일부 지나친 성령운동의 봉사자들로부터 '가계치유'의 폐해가 드러나고 있고, 전 교구에서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는 실정이다.

신심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도권의 가르침에 따라야한다. 또한 본당공동체의 일치를 저해하지 않아야 하고, 개별적인 신심차원보다는 봉사와 활동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의 모든 신심운동이 균형을 잃지 않고 올바른 신앙으로 구원에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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