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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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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31 09:55:26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김귀웅 신부 - 서울대교구 사목국 차장

 

하느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20년 전만 해도 많은 분들이 이 질문에 손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지만 요즘 그렇게 생각하는 분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매일 바치는 주님의 기도에서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합니다. 하느님은 정녕 어디에 계신 것일까요?

‘모래 위의 발자국’이라는 유명한 글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꿈속에서 자신의 일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다정한 삶을 살아왔는데 고통과 괴로움의 시간엔 오직 한 사람의 발자국만이 보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따집니다. 늘 함께 계시겠다고 했지만, 고통의 시기엔 어디 계셨냐고. 그러자 주님께서는 “그때 너는 걷는 내내 내 등에 업혀 있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에 감동했어도 우리는 삶에서 하느님은 어디 계시느냐고 울부짖게 되는 어려운 일을 종종 겪게 됩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자녀가 갑자기 불치의 병이나 죽음을 당했을 때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서 불쑥불쑥 가슴이 답답하고 먹먹해지는 어머니를 누가 탓할 수 있겠습니까? 열심히 일해 왔는데 갑자기 해고된 노동자, 길거리에 좌판을 벌여놓고 근근이 살아가는 이의 터전을 뒤엎고 앗아가는 경우, 최선에 최선을 다했는데 연속 낙방을 당한 학생, 거액의 빚을 떠넘기고 도망간 친구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할 때, 과연 하느님은 그런 사람을 업고 계신 것일까요?

이사야에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모태에서부터 업혀 다니고 태중에서부터 안겨 다닌 자들아, 너희가 백발이 되어도 나는 너희를 지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안고 간다. 너희가 늙어 가도 나는 한결같다. 내가 지고 가고 내가 구해 낸다.”(이사 46,3-4)

마지막 날에 구원해 주시고 부활시켜 주심을 믿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당장 이 고통과 괴로움에서는 구해 주실 순 없단 말입니까? 안고 가고 업고 가신다면서 쓰디쓴 독약과 같은 고통을 제 입에 넣어 주시는 것은 무슨 이유입니까?

미사를 시작하며 제대에 올라라 오늘 미사에는 누가 오셨나 성당 안을 둘러보다가 그렇게 하느님께 절규하는 아들, 그렁그렁한 눈물 머금은 얼굴과 제 눈이 마주칩니다. 요즘 그분이 겪는 고통이 얼마나 클지 어렴풋이 가늠해 봅니다. 그럼에도 저는 미사를 시작하며 인사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느님께서는 구언 역사의 처음부터, 그러니까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 그리고 요셉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창세 21,22;26.3;31.3;39,21). 감히 파라오와 대적할 수 없다고 손사래 치는 모세에게 하느님께서는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 그런 하느님을 거듭 경험한 모세는 그래서 백성들에게 반복해서 같은 말을 합니다. “힘과 용기를 내어라. …주님께서 친히 네 앞에 서서 가시고, 너와 함께 계시며, 너를 버려두지도 저버리지도 않으실 것이다.”(신명 31,8) 여호수와에게도 그 뒤를 이은 판관들에게도 하느님께서는 함께 계셔 주신 분이셨습니다(여호 1,9;판관 2,18). 다윗에게도(1사무 18,14) 솔로몬에게도(2역대 1,1)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함께 계신 하느님을 등진 채 하느님을 외면하고 살아가는 죄인들에게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돌아와 하느님과 함께 걸어가라고 거듭 촉구합니다(미타 6,8 참조).

마리아를 찾아온 천사 가브리엘은 기쁨의 원천이 무엇인지 알려줍니다.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 마리아뿐 아니라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되는 소식’(루카 2,11)은 곧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마태 1,23)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살아 있든지 죽어 있든지 당신과 함께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위하여 돌아가셨습니다.”(1데살 5,10) 그래서 승천하시는 주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였습니다.

이제 하느님의 거처는 사람들 한가운데입니다(레위 26,11; 에제 37,27; 묵시 21,3). 그래서 유다인들은 하느님께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믿음 때문에 죽음의 그늘진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며(시편 23,4), 이 세상에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고(시편 73,25) 노래하였습니다. 또한 ‘주님께서 당신과 함께’라는 인사말을 자주 사용하였습니다(탈출 18,19; 신명 31,8; 여호 1,17; 판관 6,12; 롯 2,4; 1사무 17,37; 1사무 20,13; 2사무 14,17; 1역대 22,11; 2역대 36,23).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주님의 기도 중 “하늘에 계신”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합니다. “만물을 초월하여 계신 하느님의 위엄을 표현하는 말로, 하느님께서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저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항상 우리 곁에 계심을 드러내는 것이다.”(2694~2697항)

고통 중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주님께서는 ‘나 여기 있다. 나 여기 있다.’라고 간절히 우리 귀에 속삭이는 분이십니다(이사 52,6;65,1).

미사를 마치며 강복을 하려는데 “너무 너무 힘듭니다.”라고 하소연하시던 자매님의 얼굴이 눈에 들어옵니다. 저는 더욱 힘을 주어 외칩니다.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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