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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교본해설 - 레지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가?
세나뚜스 조회수:983 222.114.24.13
2016-01-21 10:06:32
레지오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가? -신문호 가브리엘 신부

4. 끊임없는 기도(祈禱 : preces<라>)
우리가 벡실리움(Vexillum: 발음상 벡실룸이 맞습니다) 깃대1)를 오른손으로 잡고 ‘성모님의 군대’가 되겠다고 선서한 대로 성모님을 통하여, 성모 마리아가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만큼,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들에게 당신의 은총과 성덕, 재능을 베풀고 계심을 믿으며 성모 마리아와 온전히 일치하여 항상 성모님을 이 세상에 모셔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향해 영혼을 올리는 것’(성 요한 다마셰노), ‘하느님과의 대화’(성 예로니모, 성 아우구스티노), ‘친교’(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그리고 ‘친밀함’(니사의 성 그레고리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리게네스와 성 아우구스티노는 기도의 내적인 면을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여 그분과 대화하고 그분을 바라보는 것”, “애정을 다하여 하느님을 쳐다보는 행위” 또는 “하느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애정으로 가득찬 행위”라고 설명합니다. 이렇게 볼 때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셀 수 없을 만큼 호흡을 하며 살아갑니다.
호흡은 3가지 작용을 하게 됩니다. 첫째 공기를 들이마시기, 둘째 들이마신 공기의 오장육부에의 순환, 셋째 순환한 공기를 내뱉기. 어느 누구도 들이마시기만 한다거나 내뱉기만 하지 않습니다. 또한 들이마시고 내뱉더라도 순환되지 않으면 우리들은 죽고 말 것입니다. 이 중 어느 것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혼의 호흡’인 기도도 3가지 작용을 해야 합니다. 즉 첫째 하느님의 영을 내 영혼이 들이마시어 내 영혼이 살도록 하고, 들이마신 하느님을 내 영혼 안에서 순환하도록 하여 내 영혼이 생기가 있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순환한 하느님을 다시 하느님께 찬미·찬양으로 되돌려드리기를 해야 합니다. 영혼의 호흡 역시 한 가지도 소홀히 할 수 없으므로 이 3가지가 제대로 될 때 우리의 영혼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성모님은 항상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뜻에 일치하기를 원하셨고, 그리스도의 후원자셨기에 기도를 하셔야만 했습니다. 레지오는 성모님과 일치하며 성모님을 세상에 모셔 오기 위한 목표를 가지고 있기에 왜 기도를 해야 하는가를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들의 영혼은 몽포르의 루도비코 마리아 성인처럼 “몸이 공기를 마시듯 우리의 영혼은 성모님을 마셔야” 하는데, 이 행위는 미사, 영성체, 성체조배,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 등의 기도를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 성모님께 의탁하는 기도를 통해 레지오 단원의 영혼은 성모의 영혼과 하나되고, 우리 레지오 단원들은 성모님의 기도의 힘을 나누어 가지게 되어 결국 모든 삶의 궁극 목적인 그리스도의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5. 온갖 고행
고행이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한 용서를 얻고자 고해(告解)하기 위한 준비나 자신의 영신적인 발전을 위해 음식이나 욕망을 적절하게 조절하거나 억제하는 ‘절제의 덕’을 말합니다. 이 고행은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완전히 자신을 내어주어 상대를 최대로 존중하고 그에게 온전히 순종하면서 자신을 바치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면 실행해야 할 덕목(마태 16,24~25 : 에페 5,2 : 1요한 3,16)인 ‘희생’과 ‘극기’와 비슷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고통, 수치를 받으시는 십자가의 길을, 성모님은 자신보다 귀한 예수의 고통과 희생을 보셔야만 했습니다. 두 분은 예수님의 말씀처럼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을 위해 자기 목숨을 바치는”(마태 20,28 : 마르 10,45) 사랑의 극치를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우리 레지오 단원도 삶 안에서 만나는 많은 어려움을 단순히 부정적인 것으로, 피할 것으로만 이해하기보다 신성으로는 아버지 하느님과 한 번도 불일치된 적이 없으나 인성으로는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으신(마태 27,46)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로 삼고 그 아픔마저 온전히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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