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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특집 - 사랑은 죽지 않는다
세나뚜스 조회수:537 222.114.24.13
2016-01-21 10:03:48
특집/희생적 사랑

사랑은죽지않는다

최의선 세실리아


사람은 대체로 다음 세 가지 유형 중 하나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배워서 깨닫는 사람 - 학이지지(學而知之),
살면서 깨닫는 사람 - 생이지지(生而知之),
고생을 통해 깨닫는 사람 - 고이지지(苦而知之).
그런데 저는 가장 낮은 급인 ‘고이지지’에 속합니다. 능력이 부족해 늘 허덕대고 살아오면서 조용하게 자기 일 잘해 내면서 봉사까지 하며 사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부러워했습니다.

저는 한창때인 3,40대에 남편의 사업이 휘청거려 참으로 사는 게 힘들고 고단했습니다. 아이들 기르는 재미는 제쳐두고, 그애들 먹이고 입히는 일도 벅차 시부모님께 효도는커녕 그분들 존재가 부담스럽고 버겁기만 했습니다. 때로는 악에 바쳐 큰아들을 잘못 키우셨다며 남편에 대한 불만을 시어머니께 뒤집어씌우고 그분을 우시게 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생방송 구성작가로 방송국에서 날밤을 새며 일했고, 자서전 대필 등 돈이 되는 일은 가리지 않고 했었는데, 그렇게 일할 수 있었던 것은 시어머니의 헌신 덕분이었음을 그때는 알지 못했습니다. 그 어른이 얼마만큼 중노동을 하고 사시며, 쌀이 달랑달랑하면 당신은 밥을 드시지 않고 냉수에 간장 타서 한 대접 드시는 걸로 끼니를 대신하신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 시어머니(정운귀, 안나)의 희생으로 집안은 가난했지만 무사하게 꾸려져가면서 식구들 모두 건강하게 살 수 있었고, 저희 두 아들도 대학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가난한 종갓집에 시집오셔서 무서운 시집살이를 견디며 네 자녀를 기르셨고, 뒤이어 당신보다 가방끈이 긴 며느리 시집살이를 하시면서 80여 년을 살아내셨습니다.
그리고 찾아온 병마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졌는데 정작 그분의 사랑과 헌신을 기억하며 그 애씀과 희생을 그분께 되돌릴 줄 아는 주변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희생을 누구보다 많이 받은 며느리는 그분 시중드는 일을 귀찮아하며 도망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래서 모신다기보다 구박(?)에 가까운 동거가 시작된 것이지요.

며느리가 어머니의 그 크신 사랑을 깨달은 건 그분이 돌아가신 후였습니다. 그 엄청난 희생적 사랑을 새록새록 알면 알수록 며느리는 작아지면서 엎드려 자복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어떡해요? 그토록 큰 사랑을 왜 당신이 돌아가신 후에 알게 하세요. 저의 파렴치함을 어떡해요. 어떻게 용서를 빌까요? 아니, 용서는 되는 걸까요? 아아! 용서받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흑흑….”
그러다가 며느리는 깨달았습니다, 그 사랑을 갚는 방법은 어머니가 사랑했던 사람을 사랑하고, 희생 역시 살아있는 사람에게 갚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며느리인 제가 비로소 달라졌습니다. 저는 용서받기 위해서라도 어머니가 주고 가신 사랑을 실천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편은 귀찮아하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제 본래의 괜찮은 성품이 나타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가족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는지에 대해서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저 사랑이 어떤 것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고 그 사랑을 실천할 마음이 되었다는 게 기뻤습니다.
그러고 보니 세상이 얼마쯤 보이는 듯했습니다. 마음이 열리면서 평화도 얻었습니다. 그토록 갈구해도 얻을 수 없었던 평화가 강물처럼은 아니어도 샘물처럼 솟아났습니다.
그 즈음 친정어머니가 쓰러지셨습니다. 세 딸 중 막내인 제가 엄마를 모시겠다고 자청했습니다. 두 언니가 저한테 미안해할까 봐 제가 모셔야 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첫째, 시어머니를 모셔봤기에 대소변 치우는 데 익숙하다.
둘째, 우리 식구들 역시 노인과 함께 지내는 일이 몸에 배어 낯설지 않다. 시어머니를 모신 후이기 때문에 남편한테도 미안하지 않다는 것 등등.
그러나 실제 제 속내는 시어머니에게 지은 죄를 얼마쯤 갚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어쩌면 친정어머니는 이런 막내딸의 염원을 아시고 쓰러지셨는지도 모른다고 제 나름대로 소설을 쓰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그렇게 8년 동안 제 곁에 계시다가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짧지 않은 그 세월 동안 갈등도 많았고 또다시 노인한테 죄를 짓기도 했지만 그래도 잘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시어머니가 주고 가신 ‘희생적 사랑’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친정엄마는 사랑 그 자체였던 사부인의 덕을 단단히 보신 셈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치매 시어머니를 잘 모시더니 중풍으로 쓰러진 친정엄마까지 잘 모신다며, 저를 효부 효녀라고 칭송해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으스스해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저 같은 죄인도 사랑하셔서 어머니의 사랑을 기억해낼 수 있게 은혜를 베푸셨고, 그래서 회개의 은총을 주시고 용서를 청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뿐이니 칭송받을 처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죽지 않은 것입니다.
제가 그 사랑을 이어받고 또 제 아이가 제 모습을 보고 그 사랑을 실천하고, 그 자식이 또 이어받고 또또… 그렇게 된다면 어머니의 사랑은 죽지 않음은 물론 영원히 계속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사랑은 영원하다’라고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끝으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 구절을 적어보겠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코린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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