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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2월 현장 속으로 - 월성 교회의 어머니 Pr.
세나뚜스 조회수:899 222.114.24.13
2016-01-21 10:17:5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사랑 하여라”

- 대구 세나뚜스 직속 월성성당 교회의 어머니 쁘레시디움 -


월성 ‘교회의 어머니’ Pr.은 1996년 12월 26일 설립되어 현재 485차 주회까지 거행한 Pr.으로 아직 10년이 채 안 된 젊은 Pr.이다. 구성원들이 40대~60대의 직장인 여성으로 구성되어 시간적인 제약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활기 넘치는 정력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도연악(젤마나) 단장을 비롯한 10명의 단원이 활동하고 있는데 2003년에 교구평의회 직속 Pr. 강화를 위해 Pr.을 선발할 때 월성 Co.을 대표하여 뽑힌 이래 4년 간 직속 Pr.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만 벌써 쉬는 교우 7명을 회두시켜 다시 성사생활을 열심히 하도록 도우고 있으며, 입교권면을 통해 5명을 영세시켜 하느님의 품으로 인도하였으며 ‘사랑하올 어머니’ Pr.을 분가시키는 등 레지오 확장에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교회의 어머니’ Pr.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벌이고 있는 사업은 소외받고 있는 이웃을 직접 찾아가서 봉사하는 교도소 및 사회복지시설 방문봉사 활동이다. 치매센터, 시립 희망원, 들꽃마을, 각종 병원봉사 등에 조별 혹은 개인별로 적극 참여하고 있다. 그중 교도소 봉사는 다른 Pr.에도 귀감이 될 만한 활동이다.
대구 세나뚜스에서는 대구 화원교도소 마태오 공소에 4개 직속 Pr.을 설립하여 지원하고 있는데 매주 각 Co.별로 돌아가면서 수요일에 주회방문, 금요일에 미사참례를 하고 있다. 교도사목후원회 밑에 레지오 반이 설치되어 있는데 도연악(젤마나) 단장이 그 반을 책임지고 있으며 단원들도 시간이 날 때마다 이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또한 단원 전원은 교도사목후원회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특히 도연악 단장은 레지오 활동을 시작하기 전부터 교도소 봉사를 시작하여 벌써 17년째라고 한다. 단장님으로부터 교도사목 봉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대구교도소에는 약 4,000명의 재소자들이 생활하고 있는데 그 중 400명 정도가 신자라고 한다. 이들 400명은 대부분이 교도소에서 영세를 받은 사람인데 결손가정 출신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어 이들이 범죄자가 된 이유 중 큰 원인이 가정과 부모님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도소 방문을 하기 전에 신체장애우 돌보기 봉사를 하였는데 그 때에는 이들이 가장 불쌍하고 버림받은 이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러나 교도소 봉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재소자들이 가장 어렵고 힘든 이웃이라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들은 겉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정신이 온전치 못하고 마음의 병이 깊게 든 사람이기 때문이지요. 또 젊은 나이에 자 신의 의지와는 달리 구속된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큰 힘이 되어주지는 못하지만 정성을 다해 사랑으로 보듬어주면서 똑같이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이 활동의 시작이다. 여지껏 그런 대우를 받아보지 못했던 재소자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어 서서히 변화하는데, 그 모습을 보는 것이 봉사자들에게는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한다. 교도소 봉사를 통해 많은 잊지 못할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중 김영삼 정부 말기 때 사형집행을 받은 4명의 사형수 신자들은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고 한다. 이들 사형수들은 7년을 사형수로 지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하는 모습이 없이 5년간은 방문을 하러 간 봉사자들에게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태도를 취했다고 한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 방문하여 6년 째 되던 해부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는데, 마음을 열기 시작하자 모든 일에 받아들이는 것이 빠르고 급격한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전에는 방문한 봉사자들에게 “왜 왔어. 어디 신기한 구경거리라도 있어 왔나? 그래 실컷 구경해라. 여기 인간 원숭이가 있다”라고 비아냥거리며 냉소하던 태도가 어느 듯 “우리 같은 몹쓸 사람들을 보러 먼 길을 맛 있은 음식 사 가지고 이렇게 와 주시다니 여러분들은 천사입니다”라고 이야기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을 받아들이니 예수님 모습으로 변하고 선한 표정이 얼굴에 드러나게 되어 처음 봉사 오는 봉사자들은 “저런 분이 어찌 죄를 지을 수 있나요?” 하고 반문할 정도로 변화된 삶을 살아갔다고 한다. 이전의 ‘네 탓이오’가 ‘내 탓이오’로 변화하였던 것이다.
이 분들은 사형선고 7년 만에 사형이 집행되었다. 같이 사형 집행을 받은 대구교도소의 십여 명의 사형수들은 사형장에 안 들어가려고 기를 쓰며 매달려 교도관들의 애를 먹이는데 반해서 이분들은 사형장에 ‘우리의 소망’이라는 성가를 부르며 “하느님 나라에서 다시 만나자”고 말하며 웃으면서 당당하게 들어갔다고 한다. 이 광경을 보고 교도관들도 놀랐고 이후 천주교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어 영세자들도 대폭 늘었다고 한다. 이중 한 분만이 연고가 있어 시신을 모시고 갔고 나머지 세 분은 무연고라서 교도사목후원회에서 군위묘지에 안장하였다. “지금도 매년 위령성월이면 묘지에 가서 기도를 드리고 있어요.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생활한 것이 아닌지 ...”라며 단장님은 말을 맺었다.
‘교회의 어머니’ Pr.은 이외에도 한 달에 한번 씩 들꽃마을을 찾아 목욕봉사 등 노력봉사를 2년 이상 하였으며 지금은 단원들이 개별적으로 방문하고 있는 시립 희망원 방문을 Pr. 활동으로 전개하기 위해 준비 중이라 한다. 그리고 가톨릭병원에 주 72시간 노력봉사 하는 단원 등 한 사람에 한 곳 이상의 복지시설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도록 하고 있다.
이번 취재를 통해 다시 한번 우리 어머니들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분들은 40대 ~60대의 중년여성 직장인으로 구성되어 결코 쉽지 않은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한 가정의 주부이며 또한 직장인으로써 열심히 생활하면서도, 이렇게 ‘하느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말 그대로 우리 ‘교회의 어머니’들이었다. 성모님의 군대로서 성모님의 삶을 본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교회의 어머니’ Pr.이 더욱 열심히 주님의 사업에 봉사할 수 있는 은총을 내려주시길 기원해 본다.

-Se. 명애기자 김의도 헤르메네질드 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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