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운영관리 월간 레지오 마리애 / 빛

월간 레지오 마리애 / 빛

게시글 검색
[2005년] 11월 훈화 - 너와 나를 하나로 묶는 성채
세나뚜스 조회수:472 222.114.24.13
2016-01-21 09:53:41
훈화

너와 나를 하나로 묶는 성체

전종희·마르가리타 수녀

오늘도 아름다운 성당에 미사의 시작을 알리는 입당 성가가 우렁차게 퍼집니다.
더우나 추우나 삼삼오오 성당에 들어서는 교우들을 바라보면서 그들 안에서 그들을 이끄시는 하느님의 손길에 경탄합니다. (세상의 많은 향락이 유혹하지만 더 높은 가치를 향해 살아가는 우리 신자들에게 파이팅!)
레지오 마리애 주회합 날은 하루종일 일하고 저녁식사도 못한 듯한 모습으로 작업복을 입은 채, 그러나 표정만은 밝고 환하게 형제 자매님들이 성당에 입성(?)하심에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게 보기 좋고, 열심히 자기 자리를 지켜가는 모습이 대견합니다.
이런 곳에서 소임을 하는 저는 행복한 수녀입니다. 저의 행복함을 더해주는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할까 합니다.
팔순의 연세, 인생의 고달픔을 다 체험하신 할머니는 성당에서 개설한 노인학교의 학생입니다.
이 할머니는 주위 분들에게 그다지 인기있는 편은 아닙니다. 특별한 재주도 없고, 부드러움도 없습니다. 그래서 늘 혼자입니다. 이런 할머니를 저 또한 무심히 바라보며 많은 할머니들 속에 한 분으로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길목에서 마주친 할머니는 두 손에 가득 헌 상자를 들고 계셨고, 옆에는 고물이라 할 수 있는 쇠붙이가 널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냥 인사를 하고 바삐 볼일을 보러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엔 다른 장소에서 그 할머니의 뒷모습을 멀리서 보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물에 젖어 무거운 헌 상자들을 뒤적거리고 계셨습니다.
뜨거운 한여름이 지나고 개학을 하는 첫날 할머니는 봉투를 내놓으셨습니다.
처음에는 영문을 몰라 봉투의 두툼한 촉감과 새까만 할머니의 얼굴 사이에서 잠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써야 할 돈이 아닌가 해서…
나중에 안 일이지만 결코 가난한 분은 아니시고 그냥저냥 살 만하시지만 자식에게 의지하지 않고 몸소 노동하여 좋은 일을 하고 싶으셨던 모양입니다.
"힘든 노인들을 도와주어서 고맙다"고 한여름 동안 길거리 휴지들을 모아 팔아서 내놓으신 것입니다.
길거리에 버려진 고물을 모으느라 손톱 밑이 새까맣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도 꾀죄죄한 모습 때문인지 늘 맨 뒤에 앉아 수업을 받으시는 그 분은 세상의 척도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돈독(?) 올랐다느니 하는 주위의 입방아에도 주눅 들지 않고 소신껏 자신의 목표를 향해 사시는 분이었습니다.
가진 것 내놓지 않고 입으로만 올리는 빈 기도, 주면 받을 것을 먼저 계산하는 영리함이 아니라 온몸으로 '땀 흘리는 사랑'에 헌신함으로써 주님의 삶을 사는 것, 그것이 바로 성체성사에 접근하는 방법이 아닐까?
할머니의 삶을 통해 세상의 눈으로가 아니라 하느님의 눈으로 세상을 따뜻이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떨어졌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하게 녹이고 배부르게 먹어라" 하고 말만 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야고 2,1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성체성사의 해를 설정하신 것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수난의 극한 상황에서 당신보다 형제를 더 걱정하신 그 사랑이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삶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세상 끝나는 날까지 형제를 위해 내놓으신 주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삶을 실천하는 것. 한 알의 밀이 바수어져서 형체는 사라져버렸지만 본성은 살아서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져 너와 나를 하나로 묶어버리는… 성체!
그 오묘함이 성체를 모시러 나가는 저를 전율케 합니다.
그러나 오늘 제 자신 그대로 있음이 부끄럽습니다.
아름다운 거제도 앞바다에 바람이 붑니다.
바다의 바람을 잠재우시는 주님과 하나되어 떠나는 인생길에 두려움은 없습니다.

마산교구 장승포 성당
 

댓글[0]

열기 닫기

top